[포기하는 2030] ① “구직 활동 하면 뭐해요? 안 뽑는데”...그냥 쉬는 2030대, 60만명

이현승 기자 2023. 6. 1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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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쉬었어요” 2030세대, 60만명 돌파...4050세대 넘어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기업, 신입 대신 경력 수시 채용
文 정부 때 채용 폭증한 공공기관, 부채 급증에 채용 다이어트
취업 시장서 불이익받는 ‘코로나 학번’의 눈물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2030 세대가 6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니트(NEET·교육을 받거나 직업 훈련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족(族)이 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취업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늘어나는 임금 격차...이런 여러 요인들이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을 ‘그냥 놀게’ 만들어 버린다.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새로운 인력이 수혈되지 않는 노동시장은 생산과 소비가 멈춰 경제 전체의 조로(早老)화를 부른다. 경제활동인구로의 편입을 포기한 2030 세대가 급증한 원인과 영향, 그 대책을 5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26세 주영지씨는 요즘 템플 스테이와 사설기관이 하는 스트레스 치유 캠프에 참여하는 걸로 소일하고 있다. 서울 4년제 사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주씨가 올해 들어 일을 한 일수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이틀 남짓이 전부. 작년 하반기까지 인턴으로 근무했던 대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이 안 된 후 올해로 ‘취업 3수’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아 힐링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그냥 놀고’ 있다.

하지만 주씨가 처음부터 취업 활동을 접었던 건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취준생들처럼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 가리지 않고 최소 100개 군데 이상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학점 4.1점(4.5점 만점), 토익 900점대에 오픽(영어 말하기 시험) IH(7등급 중 위에서 두번째), 컴퓨터활용능력1급, 사회조사분석사2급, 한국사1급 보유자에다 구직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6개월 간 신규 서비스를 출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도 있는 그를 채용해 주는 곳은 없었다.

취업 준비 기간 생긴 불면증에 잠을 못 이루는 밤이면 작년 상반기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중소기업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거기라도 갔어야 하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게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안 가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서 당분간 취업준비는 중단하고 수차례 낙방하느라 다친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데 집중하려 하고 있다.

주씨의 구직 의지를 꺾은 데는 신규 채용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 구조적 원인 탓이 크다. ‘상반기 공채 합격후기’가 한창 올라와야 할 시기지만, 회원 200만명 이상을 보유한 네이버의 한 취업 정보공유 커뮤니티는 요즘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대신 취준생들의 자유게시판에 “현직자(현재 채용 상태인 직장인)들이 합격하고도 남을 스펙이라고 했는데 서류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 중”, “취업 재수까진 괜찮았는데 3수를 하려니 부모님 눈치가 너무 보인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냥 쉬는’ 20~30대는 지난 5월 기준 60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2만6000명 증가했다. 같은달 기준으로 2018년 44만7000명, 2019년 50만4000명으로 계속 증가세를 기록하다 2020년부터 60만명을 넘겼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달에 이어 두달 연속 쉬었다는 2030 인구는 재취업이 어려운 4050 인구(61만3000명)를 넘겼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그래픽=손민균

현재 2030 세대가 겪는 구직난은 기성 세대들이 겪은 것보다 크다.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일자리 자체의 부족이다. 조선비즈가 인터뷰한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취업준비생들은 대기업, 공기업, 스타트업 등에서 제공하는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코로나를 거치며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들은 신입을 뽑아 교육 시키는 대신 경력 수시 채용을 선호하고 공기업은 정부의 재정 긴축 기조로 채용을 줄였다. 스타트업은 풍부했던 유동성이 줄어들며 자금난에 시달리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실정이다.

◇ 10대 大기업 중 3곳만 그룹 신입 공채… 공기업·스타트업은 허리띠 졸라매

서울 4년제 사립 대학교를 졸업하고 패션 회사에 지원 중인 곽모(26)씨는 올해 상반기에 가장 원하던 기업의 채용 공고가 뜨지 않아 낙담했다. 인턴이라도 지원하려고 했지만, 자격 요건에 관련 근무 경험이 포함돼 지원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취업을 하려고 경험을 쌓는건데 그 경험을 쌓는 곳마저 경험을 요구하니 경력 없는 취준생은 아예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기업이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100인 이상 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신규채용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 기업 중 단 7.2%가 ‘정기 공채만 실시한다’고 답했다. 67.4%가 ‘수시 채용만 한다’고 답했고 25.4%는 ‘정기공채와 수시 채용을 병행한다’고 했다.

올해 10대 대기업 중 그룹 대졸 공채를 실시하는 것은 삼성, 포스코, 신세계 정도다. 현대자동차와 LG, SK그룹 등은 공채를 폐지하고 계열사별 수시채용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한다.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제품, 서비스 수요 감소가 예상돼 신규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할 여력이 없어진 영향이다. 과거처럼 대졸 신입을 뽑아 오랜기간 가르치는 대신 직무에 최적화 돼 즉시 현업에 투입할 경력을 채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공 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대기업 보다 더 선호하는 공공기관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 때 지나치게 늘린 여파로 부채가 급증하자, 현 정부 들어 다이어트에 나선 상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공기관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는 2017년 2만2659명에서 2019명 4만1322명으로 폭증하다 2020년 3만명대, 2021~2022년 2만명대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 2만2000명+알파(α)로 예정돼 있다. 6년 만에 최소 규모다.

대기업과 함께 청년 고용의 한 축을 담당하던 스타트업 역시 코로나 때 풍부했던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2214억원보다 60.3% 감소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74.2%(7688억→1986억원), 게임 73.7%(746억→196억원) 등 감소 폭이 큰 것으로 집계된다.

프롭테크(부동산+기술) 기업 직방은 최근 2~3개월 새 전체 임직원의 10% 가량이 회사를 떠나 지금은 임직원 수가 400명대다. 스마트팜 구축을 통해 농업계에서 대표적인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으로 꼽히던 그린랩스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는데, 이 회사의 올해 1~4월 퇴사자 수가 300여 명에 달한다. 전체 임직원의 약 70%다. 유명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뱅크샐러드, 온라인 수업 플랫폼인 클래스101 등에서도 최근 전체 직원의 10%가 짐을 쌌다.

취준생 박모(28)씨는 2년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월급이 계속 올라 아예 눌러 앉을까 생각 중이다. 그는 “올해 초까지 하던 취업스터디원 5명 중 1명만 취업에 성공했다”며 “나머지 세 명은 취업을 포기하고 전문직 공부를 하거나 알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이 너무 안되니까 취업에 대한 희망조차도 희미해진다”며 “우리끼리는 어차피 취업해도 집도 못사는데 그냥 알바를 하면서 편히 살자는 말도 한다”고 말했다.

취업 시장서 불이익 받는 ‘코로나 학번’

“제 동기들 대부분 학점이 4점이 넘던데…4.07점으로 취업 될까요?”

20학번 김영은(22)씨는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다음 커뮤니티 질문 게시판에 최근 이런 글을 올렸다. 그는 코로나가 한창 확산하던 2020년 대학에 입학해 올해로 4학년이 됐다. 거의 2년 간 계속된 비대면 강의로 통학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전국 대학교가 학업 부담을 낮춰준다는 취지로 상대평가 수업을 상당수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학점 관리는 비교적 수월했다.

문제는 김씨와 취업 시장에서 경쟁할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코로나 발생 전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A학점 이상 30%, B학점 이상 40%, C학점 이상 30%으로 상대평가 기준을 적용했으나 2020년부터 절대평가로 바꿔 A학점 이상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도 B학점 이상 취득학생의 비율은 87.5%로 2019년 71.7%보다 올라갔다.

국내 한 대기업의 인사팀 직원은 “최근 1~2년새 입사 지원한 사람들의 평균 졸업 학점이 코로나 이전보다 눈에 띄게 올라갔다”며 “학점보다는 코로나 기간 어떤 사회활동을 했는지,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나 동호회 활동 등을 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는지를 눈여겨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취업 시장에선 코로나 시기 대학에 몸 담은 15~23학번을 포괄하는 ‘코로나 학번’이란 단어는 일종의 주홍글씨가 됐다. 그렇잖아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전화나 대면 미팅을 기피하고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기성세대가 많은데 코로나로 소통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유진호(29)씨는 올해 초 국내 IT 대기업 최종 면접에 들어갔다가 예상 질문이 대부분 빗겨가 충격을 받았다. 지원한 마케팅 직무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질 거라 생각해 준비해갔는데, 30분 간 진행된 면접 시간 동안 회사 임원이 ‘이런 상황에서 팀원들과 어떻게 소통할거냐’는 질문만 계속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다양한 조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직장 상사가 내 기준에서 옳지 않은 방식으로 일을 할 때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성과 평가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의 질문에 유씨는 나름대로 답변을 했지만 최종 낙방 했다.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것처럼 일명 코로나 학번이 이전 학번보다 또래집단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오랜기간 조모임 없는 비대면 강의를 듣고 학생회·과 모임, 축제, 엠티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같은 학과 동기, 선후배들과 어울릴 기회를 빼앗겼다.

이혜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고용서비스정책학과 교수는 코로나 학번이 대학 내 지지체계와 일 경험 기회가 부재하고 고용 절벽에 맞닥뜨리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장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자기주도적으로 목표를 성취해나간 세대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와 기업은 코로나로 인해 그들이 잃어버렸던 일 경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실무를 익히고 직무 관련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며 “대인관계 역량이 회복될 수 있도록 집단상담과 멘토링, 모의 면접 훈련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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