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아파트'면 뭐해… 초등학생 등굣길 '1시간'

김노향 기자 2023. 6. 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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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학교 없는 아파트'(1)] 고덕강일3지구 '학교 대란'… 2지구도 예견된 일

[편집자주]신도시 개발에 따른 도심 쇠퇴와 학교 수급 불균형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구)도심은 학생 수 부족으로 통·폐합이 이뤄지는데 비해 신도시는 과밀학급 문제를 겪고 있다. 학교 수가 부족해 위험천만한 통학 길을 다니거나 학생 관리의 부재로 교육 서비스 질 하락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주민들과 지자체가 지속해서 문제 제기함에 따라 학교 설립 요건이 완화되는 추세이고 학교 재배치와 복합시설 건축 등 여러 대안이 있지만 현실화까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돈 되는 아파트만 짓고 학교 설립엔 책임을 회피하는 사업자와 권한이 없는 지자체, 융통성 없는 실행력으로 뒷짐만 진 교육청 간 협의가 쉽지 않다. 피해는 고스란히 통학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과 세금을 내고도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마저 포기해야 하는 학부모들의 몫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학령 인구 감소를 이유로 2011년 학교 설립 기준을 최소 2000세대에서 4000세대로 높였으나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교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원도심과 신도시 모두 학교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반값 아파트'면 뭐해… 초등학생 등굣길 '1시간'
(2) "우리 애 어느 학교 보내요?" 4만명 사는데 초등학교 2곳
(3) 아파트 따로 학교 따로… 고통받는 아이들

#. 1만2000가구가 조성되는 서울 강동구의 고덕강일공공주택지구는 '오세훈표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주택 등이 공급됨에 따라 자녀를 양육하는 젊은 세대들부터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기가 막힌 일들이 있다. 고덕강일3지구에 위치한 A초등학교. 전교생 451명으로 학급당 학생 수는 19.6명이다. 서울시내 전체 평균(21.3명)과 강동구 평균(22.0명)보다 적지만 이 학교엔 매일 왕복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등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전국의 대부분 신도시들이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학교 설립 권한을 가진 교육청은 과밀학급 기준과 학생 수요 등을 놓고 탁상행정만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동구는 이전부터 초등학생 안전과 불편 해소를 위해 사업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측에 학교 설립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SH공사는 "학교 설립 권한은 관할 교육청에 있음에도 (교육청이) 학생 수 부족에 따른 예산 상황 등을 고려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기관들의 이해관계로 학교용지부담금을 내고도 정작 중요한 공공서비스조차 누리지 못하는 주민들의 항의와 민원이 빗발치자 교육부는 올 초 '작은 학교' 설립 기준을 완화해 학교 신설 문턱을 낮췄다. 그럼에도 실행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현재 통학 불편 문제가 있는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해당 기준에 따라 학교 신설·이전을 결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 난관이 예상된다.

김은옥 디자인 기자


학교용지 있는데 정작 학교는 없다


SH공사가 2021년 공급한 고덕강일3지구 강동리엔파크14단지는 배정학교인 강솔초등학교까지 어른 걸음으로 약 25분이 소요된다. 초등학생 걸음으론 30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이수희 강동구청장은 지난 5월31일 고덕강일2지구 3단지 착공식에 참석해 "SH공사가 분양 당시 초등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해놓곤 부지만 마련한 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착공식이 진행된 3단지의 경우 도로 하나를 건너면 강빛초등학교가 있어 통학 문제는 없지만 향후 대단지가 완공되면 앞서 3지구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강동구 관계자는 "3단지는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단지 구성에 따라 앞으로 과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착공식에 참석한 김헌동 SH공사 사장 등에 구청장이 주민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H공사는 14단지 개발계획 당시 초등학교 용지를 포함했으나 개교 기준에 따른 학생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교 설립을 위해선 학령 인구를 파악해야 하는데 고덕강일3지구의 경우 현재 인근 단지 학생 수가 적어 신설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내년 2월 10단지가 입주하지만 교육청이 추정하는 학생 수와 강솔초 학생 수를 고려할 때 과밀학급 기준인 28명보다 낮다"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는 지난 2월 경기도교육청 간담회에서 "그동안 여러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중앙투자심사 제도 개선 건의가 있었다"며 "소규모 학교 신설·이전을 위해 외부 재원을 활용하고 학교 시설 복합화 등을 추진할 때 중앙투자심사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학교복합시설은 학생뿐 아니라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등 복지시설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총 사업비 300억원 미만 소규모 학교를 설립하거나 원도심의 학교를 신도시로 이전할 때 중앙투자심사를 받지 않고 교육청이 자체투자심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또 다른 기준에 부딪친다. 교육부와 소규모 학교 설립 협의를 이룬 경기도교육청은 적정 학급 기준을 초등학교 24학급, 중·고교 21학급으로 정했다. 다만 통학이 불편한 경우 여건을 고려해 최저 18학급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설립 기준 완화 방침에 대해선 "교육부의 계획이 있더라도 (교육청은) 지침이 전달돼야 실행할 수 있다"면서 "현재 단계에서 강동구의 학교 부족 문제를 소규모 학교 설립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전국 신도시, 학교 부족으로 몸살


교육부는 학령 인구 감소를 이유로 2011년 학교 설립 기준을 최소 2000세대에서 4000세대로 높였으나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교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원도심과 신도시 모두 학교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경기도와 도교육청에 따르면 올 5월 말 기준 경기도내 인구는 1361만명을 넘었다. 2023학년도 경기도의 과밀학급 비율은 △초등학교 10.8%(전체 3만658교 중 3314교) △중학교 65.7%(1만2994교 중 8539교) △고등학교 31.5%(1만3473교 중 4249교) 등이다. 전국 과밀학급의 41.7%가 경기에 몰려 있는 셈이다.

과밀학급은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인구 유입이 주원인으로 2016년 8월~2023년 4월 경기도내 내국인 수 증가 지역은 ▲화성 30만5000명 ▲하남 13만5000명 ▲김포 12만9000명 ▲평택 12만4000명 등의 순이다. 경기 양주시 옥정신도시는 젊은 세대의 유입으로 인구가 25만명을 넘어 학년당 학급 수가 12~19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제시간에 점심 급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전 서구 용문동 일대는 2년 후 약 2800가구가 조성될 예정인 가운데 입주자 자녀들이 최대 1.4㎞ 거리에 있는 탄방초, 문정초, 백운초, 가장초 등에 분산 배치를 받는다. 이면도로와 진·출입로가 많아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커 최근 시교육청과 용문초 신설 추진위원회를 주축으로 학교 설립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경남 양산시에선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박종훈 교육감이 소규모 학교 설립을 공약했으나 경남교육청은 땅 소유주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이자 면제 등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최근 교육부가 추진한 학교복합시설로 방향을 돌렸다.



사업자-교육청 '네 탓 공방'


고덕강일지구의 학교 부족 문제는 공공임대를 철회하고 민간분양을 해야 한다는 엉뚱한 해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공임대의 경우 면적이 작고 자녀 세대를 양육하는 3~4인 가구가 이전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구와 교육청의 논리다.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관계자는 "SH공사의 12단지 추가 개발계획이 확정되면 학교 설립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SH공사 측은 "구의 요청에 따라 12단지 민간분양을 검토하고 있으나 개발계획과 학교 건립을 연결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초등학교 개교 문제를 놓고 교육청과 논의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교육청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사업계획 변경이나 학령 인구 감소로 학교를 설립하지 못하는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용지 지정을 해제할 수 있지만 SH공사는 지정 해제를 검토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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