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바닷물, 윤 대통령도 먹으랜…해녀는 괄락괄락 마셔”
외쳐봐야 무슨 소용…일본에 당하기만 해”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730’을 쳐보세요.
17일 오후 4시, 제주의 동쪽 끝 제주시 구좌읍 종달항 선착장에 20여명의 종달리 해녀들을 태운 어선이 들어왔다. 남편과 친지들이 해녀들이 채취한 성게를 담은 포대와 물질 도구를 배에서 끌어 올렸다. 해녀들의 바구니에는 해삼이나 오분자기도 보였다. 해녀들은 이날 오전 10시 배를 타고 앞바다에 나가 오후 3시30분께까지 성게를 채취했다.
어선에서 내린 해녀들은 잠수복을 입은 채 다시 무거운 포대를 둘러매고 성게 작업을 하러 자리를 옮겼다. 성게를 까서 노란 성게알을 일일이 용기에 넣은 뒤 수협 등에 넘긴다. 제주바다를 텃밭으로 평생 살아온 해녀들의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이것만(해녀 물질) 평생 행 먹엉 살아신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주게.”
기자가 배에서 올려준 물건을 같이 나르다 해녀 한순덕(65)씨에게 “원전 오염수가 걱정되느냐”고 묻자 곧바로 “걱정되주 안 되쿠과? 하루종일 입에 물 물엉 살암신디”(걱정되지 안 되겠어요? 온종일 물질하면서 바닷물을 입에 물고 살고 있는데)라며 이렇게 답했다.
한씨와 남편 함명의(67)씨가 선착장 앞에 자리를 잡아 채취한 성게를 풀어놓고 일일이 까고 있었다. ‘아우, 지쳐~’ 하면서 잠수복을 입은 채 털썩 바닥에 앉은 한씨는 “내가 아는 사람도 소금 40포를 사더니 다음날은 20포를 더 사는 걸 봤다. 소금 사재기를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며 소금 사재기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씨가 “(오염수 해양방류를 어민과 시민사회가) 막아보려고 하지만 대통령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남편 함씨가 덧붙였다. “말 듣겠어? 1년이 넘도록 (야당) 대표도 한 번 만나지 않았는데”라며 “정치가 경허는거우꽈?”(그렇게 하는 겁니까)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선착장 곳곳에서는 성게 작업이 한창이었다.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제주도를 둘러싼 환해장성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구멍이 숭숭 뚫린 바닷가 빌레(너럭바위)에는 수국, 노란색의 산괴불주머니, 하얀색 돌가시나무, 나팔꽃 비슷한 갯메꽃이 서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해안도로변 어촌계마다 해녀들이 타고 다니는 삼륜오토바이와 스쿠터, 트럭들이 주차돼 있고, 주황색의 테왁들이 걸려있어 이채로웠다.
불탄 교실 새로 짓기까지 ‘학교바당’
온평리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남자 보앙 온평리에 결혼 안 허고, 바당 보앙 결혼한다.” 그만큼 온평리 바다가 좋아서 해녀들이 바다를 보고 시집온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물살이 세서 품질 좋은 미역이 자라는 바다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26일 해안도로변에 있는 온평리어촌계에서 성게 작업을 하던 해녀 현복실(65)씨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열 받아 죽어지커라. 그추룩 먹엉 좋댄허민 무사 반대허여. 진짜로 일본이 방류하면 성게고 뭐고 데모허래 가사주.”(괘씸해 죽겠어. 그렇게 오염수를 마셔서 좋다고 하면 왜 반대하겠어. 정말 일본이 방류하면 성게고 뭐고 데모하러 가야지.)
현씨는 해녀들이 모이면 ‘원전 오염수’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옆에서 부지런히 성게를 까던 동료 해녀(70)는 “물질을 직업으로 사는 우리 해녀들한테서 좋은 소리가 나오겠느냐. 큰일이다”고 했다. 이 해녀는 “바다에 방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성게를 까던 현씨는 “우리나라에서는 ‘괜찮다’, ‘먹어도 된다’는 식으로만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염수를) 먹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물질을 하기 시작해 50여년이 됐다. “초등학교 4~6학년 때는 미역을 채취하는 날은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보냈다. 미역 채취를 도우라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온평리에는 ‘학교바당’이 있었다. 1950년 온평초등학교가 불에 타자 해녀들이 온평리 바다 양쪽 경계를 학교바다로 정해 공동으로 미역을 채취하고 팔아 교실을 지었다. 지금도 학교에는 이를 기리는 ‘해녀공로비’가 있다. 현씨의 어머니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역사가 있는 바다에서 살아온 해녀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현씨는 “오염수가 방류되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느냐. 당할 수만은 없지 않으냐”고 해다. 또 다른 해녀도 “물질을 해서 해산물을 판다고 해도 우리 자식들한테 가고, 여러 사람이 먹게 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성산일출봉 바로 앞 오정개 해안에서 만난 고숙자(78)씨는 물질 경력 62년째의 현역 해녀다. 오정개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엔 일본 쓰시마가 보인다. 오정개 옆으로 일출봉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주황색 감귤 모양의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고씨는 “먹고살 것이 물질밖에 없는데 오염수를 방류하면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까지 72년을 물질한 은퇴해녀 오옥추(90)씨는 옆에서 가만히 오정개 해안을 바라보다가 고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이나 어민 근심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던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잔물결이 이는 귀덕2리어촌계 인근 정자에 전·현직 해녀 두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현역 해녀 김조자(87)씨는 “평생 바다에서 먹고살았는데,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라며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 그 얘기뿐”이라고 했다. 이곳에서도 한창 성게 채취를 하고 있었다.
“보리가 상글상글할 때 성게가 잘 먹고 요마. 사름 곹으면 솔쪄.”(보리가 익어갈 무렵 성게도 잘 먹어서 내용물이 꽉 차. 사람 같으면 살쪄)
옆에 있던 은퇴 해녀 고순화(90)씨가 이렇게 말하며 “그런 때 해녀들이 작업하는 거야”라고 했다.
“우리는 육상보다도 해상을 크게 믿고 살았지. 바다를 가꾸면서 오늘까지 살다 보니 이런 일(오염수 방류)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평생을 바다에서 산 입장에서는 모두 반대해.”
고씨는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섬에서 무엇을 해먹고 사나. 바다를 믿고 살지.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 어민과 해녀들이 데모하는 거다”라고 했다.
“나는 늙어서 오염수 방류 반대하는 데모에 동참하라고 하면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노인일자리 나가서 한달 동안 번 27만원 가운데 7만원은 (데모하는 사람들한테) 희사하겠어.”
애월에서 한림으로 가는 해안도로에는 짙은 보랏빛 송엽국이 몽글몽글한 돌담 사이에 비집고 꽃을 피워 뜨거운 햇살 아래 정열을 뿜어냈고, 그 옆의 갯무꽃은 소박했다. 한 해녀는 물질한 뒤 자가용에 물질 도구를 싣는 모습도 보였다.
한림읍 수원리어촌계에서 만난 해녀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성게 작업을 하면서도 오염수 이야기가 나오자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영국 교수님이 그 말씀 하던데 그 가족들 먹이라고 헙서. 조류라는 건 온 나라를 다 돌아댕기는 거 아니우꽈. 그 교수님신디 몇 년간 먹으랜 해봅서. 우리 해녀들은 바닷물을 하루에도 몇번씩 먹읍니다.” 어촌계장 해녀 양영삼(75)씨가 말하자 현경옥(82)씨가 말을 이었다.
“아이고, 참말로. 우선은 대통령한테 먹으랜 헙서. 원원. 파도가 칠 때는 우린 괄락괄락 먹어집니다.”
성게알을 하얀 용기에 담던 김영옥(80)씨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아니라도 바다가 오염돼서 백바당이 됐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오염됐는데, 후쿠시마 오염수까지 방류하면 되겠냐”며 “바다에만 오면 화가 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찾은 한림읍 옹포리 해녀들은 비양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를 배로 실어왔다. 그 시간 남편들은 전날 밤에 빗방물이 내려 포구에 널었던 우뭇가사리를 거둬들였다가 다시 널어 말린 뒤 30㎏씩 대형 포대에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장아무개(73)씨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어도 무슨 소용이 있나. 국민이나 어민들이 걱정하는 심경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잖아”라고 말했다. 박아무개(75)씨는 해녀들이 채취한 우뭇가사리를 옮기다 말고 “불쌍한 우리는 외쳐봐야 소용없어. 언제나 일본사람들한테 당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제주시 도두동 어민들이 해상시위에 나선 데 이어, 지난 13일에는 어민과 해녀 등 1천여명이 일본총영사관이 있는 제주시 노형로터리 부근에서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평생을 물질로 먹고 살아온 해녀들의 본능적 불안은 위정자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겹쳐 정부와 전문가의 어떤 ‘과학적’ 설명으로도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았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35도, 살려고 밖에 나온 사람들…당신이 실내 머무는 사이
- 홍준표 대구시장을 위한 성교육
- IAEA 1~6차 보고서 집중해부…일 오염수 방출 ‘족집게 컨설팅’
- ‘수능 주관’ 이규민 평가원장 사퇴…“6월 모의평가 책임”
- 체포동의안 부결 넉 달 만에…이재명 ‘불체포 특권’ 포기, 왜
- “올해는 일반적 폭염과 다르다”…45도 더위 100명 숨져
- 제주항공서 또 ‘출입문 개방’ 시도…승무원 등이 제압
- 홍준표 “질문 같지 않네”…답변 막히면 ‘막말’ 버릇 또 나왔다
- “오염수 바닷물, 윤 대통령도 먹으랜…해녀는 괄락괄락 마셔”
- 요양원 안 가고 싶어서…노후에 ‘발코니 연결’ 23가구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