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재난에 대비하는 정부의 자세
18세기 스코틀랜드 한 병원에 서서히 죽어가는 한 환자가 있다. 실력있는 의사들조차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지만 20세기에서 타임슬립(시간여행)한 간호사 출신의 여주인공은 그의 소변을 살펴보고는 단박에 무슨 병인지 파악한다. 넷플리스 드라마 <아웃랜더>의 한 장면이다. 과학이 크게 발전한 오늘날에는 예측이 쉬운 일들도 과거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의 실체를 모르고, 대비법은 더더욱 몰랐기에 사회적 불안감이 퍼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지리적 특성상 어민들과 수산업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1인당 수산물 섭취량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수산물을 자주 먹는 국민들 역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요즘 친한 지인·친인척을 만나거나 연락하게 되면 안부 인사로 “소금 사놨냐”고 물어볼 정도다.
국민들이 이렇게 불안한 배경에는 원전 오염수 방류를 놓고 현대 과학자들조차 그 안전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학자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오염수 10리터도 마실 수 있다”며 오염수의 안전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일본 원전 설계에 참여했다는 고토 마사시 박사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달리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오염수를 처리한 후에도 여전히 삼중수소 외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라며 “방사성 핵종을 어느 정도까지 제거했고 정화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염수 방류의 경우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아닌 절대량이 더 문제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처리한 오염수의 삼중수소를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더라도 내보내는 양이 방대하기에 위험천만하다는 것이다.
원전 오염수 논쟁을 놓고 국민들이 정작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오염수 방류 그 자체보다 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있다. 향후 더 큰 재난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별일 없을 것이라는 입장만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염수 안전을 위한 과학적 검증을 강조하지만 실은 일본 정부의 설명만 되풀이할 뿐 국민 불안을 잠재울 실질적인 안전 대책이나 제대로 된 검증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주·전남·경남·부산·울산 등 한·일해협 연안 5개 시·도가 피해 어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요구하는 ‘오염수 방류 대응 특별법’ 제정이나 손실보상을 위한 기금 마련 등에 대해서도 국민 불안으로 이어진다며 거부한 상태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을 두고 ‘괴담’ 운운하는 여당이 과거에는 한목소리로 오염수 방류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2020년 10월 일본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발표하자 당시 국민의힘 성일종 비상대책위원은 “오염수가 노출되면 우리나라는 직접적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단 한 방울의 오염수도 용납 안 된다”고 반발했다. 2021년 6월 국회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결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당시 국회의원 재석 191명 중 찬성 188표, 기권 3표로 통과됐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대한 것인데,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 여당이야말로 국민의 건강권보다 정치적인 셈법을 우선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재난 대응과 관련하여 줄리엣 카이엠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미래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과잉반응처럼 보일 수 있는 시점에 먼저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지역에 있던 오나가와 원자력 발전소는 평소 안전을 최우선에 둔 설계와 계획 등으로 쓰나미가 몰려왔을 당시 원전이 안전하게 가동을 멈췄지만 이 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추후 발생할지 모르는 만약의 피해에 대비해 관련 보상책과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고, 구상권 청구를 위해 일본 정부·도쿄전력을 상대로 한 소송 제기 등의 원칙도 세워야 할 것이다. 안전을 넘어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선제 조치들이다. 윈스터 처칠은 “태도는 사소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거대한 차이를 가져온다(Attitude is a little thing that makes a big difference)”고 말했다. 국민들은 위기 상황 앞에서 국민들을 먼저 안심시켜주는 정부를 원한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moon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루 피하려다 차가 밭에 ‘쿵’···아이폰이 충격감지 자동신고
- 파격 노출 선보인 박지현 “내가 더 유명했어도 했을 작품”
- [종합] ‘케이티♥’ 송중기, 둘째 출산 소감 “예쁜 공주님 태어나”
- 명태균 “오세훈 측근 A씨로부터 돈받아” 주장…오 시장측 “전혀 사실무근” 강력 반발
- ‘대학 시국선언’ 참여 교수 3000여명···“대통령 즉각 하야하라”
- “23일 장외집회 때 ‘파란 옷’ 입지 마세요” 민주당 ‘특정색 금지령’ 왜?
-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의 중단”···학생들 “철회 아냐” 본관 점거 계속
- 홍준표 “이재명 망신주기 배임 기소…많이 묵었다 아이가”
-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전액 삭감’···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
- 불법 추심 시달리다 숨진 성매매 여성…집결지 문제 외면한 정부의 ‘게으른’ 대책 [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