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줄세우기 그만, 이젠 다극화 질서”…싱가포르 외교장관의 일성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워싱턴 외교포럼에서 “줄세우기 그만”
“미·중은 평화·발전에 선의경쟁하라”
작지만 강한 아세안, 한국에 시사점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동남아시아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발라크리쉬난 장관은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에 국제사회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 중국, 유럽 모두에게 동남아의 평화·번영·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분을 주고 싶다”며 “평화와 발전을 위한 동기를 부여해 안정적인 힘의 균형이 달성되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미·중 갈등 격화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등이 외교 전략 수립에 고충을 겪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20일까지 방미를 이어가는 발라크리쉬난 장관은 미국 외교 전문가들을 향해 주저함 없이 속내를 피력했다. 그는 “미국이 유일 강대국이었던 국제질서 체제가 중국, 인도 등 신흥 강대국의 등장으로 다극화 질서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러한 새로운 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는 미·중 경쟁에서 잘못된 (선택을 강요받는) 양자택일에 갇혀서는 안 된다”며 “모든 국가들이 대립 대신에 경쟁·협력하는 자신의 방식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의 줄세우기는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이같은 줄세우기를 거부한 셈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체제 강화를 주도하는 미국의 인식 변화에도 주목했다. 지난달 일본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끄집어낸 발언을 언급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디리스킹(위험 제거)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이 변할 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발라크리쉬난 장관은 미국의 반도체 동맹과 중국의 반발 등과 관련해, “양국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면서도 “동남아에서 디커플링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이 자신들이 덜 취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기실현적 예언을 양산하는데, 분열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세안 회원국에 미·중 갈등 국면은 어려움을 가중시키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기회가 된다는 분석도 많다. 싱가포르의 유연성은 그런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미·중 주도의 신냉전 구도가 도래하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확실성이 담보됐던 국제질서가 변하자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 투자기관들이 투자 기준을 내부적으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의 ‘싱가포르 선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혹은 홍콩에 아시아 핵심 거점을 둔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싱가포르뿐만 아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 ‘초강대국 싸움에서 살아남는 법’과 ‘서방이 나머지를 이길까’라는 기사에서 25개국을 묶어 트랜젝셔널25(T25)로 지칭했다. 아세안에서는 한때 비동맹의 맹주였던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이 미·중 갈등의 자장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국가로 분류됐다. 세계 최대인구 대국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인도를 비롯해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남미의 브라질, 미국의 중동 외교결정의 지침이 되는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T25에 포함됐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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