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검사 때 말버릇 못 고쳐…한국사회 ‘언어의 격’ 위태

성한용 2023. 6. 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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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85
논리 있되 상처 주지 않는 언행
말로 하는 정치 기본 덕목인데
‘피의자 모욕’ 주던 습성 여전
‘험한 말’ 사회적 확산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료를 발탁하던 네 가지 기준입니다. 용모가 준수하고,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판단력이 정확하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입니다.

‘사의재’(四宜齋)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됐을 때 살던 집입니다.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고, 용모는 엄숙해야 하고, 말은 참아야 하고, 행동은 진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들과 장차관 출신들이 올 초 정책 포럼을 만들며 이름을 사의재로 지었습니다.

신언서판과 사의재에는 모두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의 중요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인은 말을 잘해야 합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의 말은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을 담아야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논리가 정연하고 품위와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핵심을 찌르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됩니다. 참 어렵지요?

‘사의재’ 교훈과 거리 먼 윤 대통령

대한민국 최고 정치인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어떨까요? 윤 대통령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말이 많습니다. 주저함이 없고 당당합니다. 표정은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넘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지난 13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국무회의 발언이 그랬습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천안함 함장 비하 논란을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담고 있는 헌법 정신의 실천”이라며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했습니다. 반국가 행위라니요? 너무 많이 나갔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에 대해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적발되었다. 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 부정의 형태도 다양했다”고 했습니다. 지방교육 재정교부금 합동 점검에 대해 “학령인구는 주는데 세수가 증가하여 교육교부금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조금은 남발되고, 검증과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부정과 비리의 토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혈세가 정치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고 지난 정부에서만 400조원의 국가채무가 쌓였다. 이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 행위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 행위”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납세자에게 사기를 쳤고 미래세대를 착취했다는 의미입니다.

너무 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팬데믹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국민을 위해 재정 확장이 불가피했던 상황은 일부러 외면한 것일까요?

윤 대통령은 최근 한-중 관계에 대해 “한-중 관계는 늘 상호 존중과 우호 증진, 공동의 이익 추구라고 하는 대원칙을 갖고 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했으면 딱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최근 발언을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들이 불쾌해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대통령이 일개 대사의 발언을 직접 비난하면서 대통령의 격도 낮아졌습니다. 오죽하면 같은 당의 윤상현 의원이 “대통령이 마치 외교 싸움의 전면에 나선 것 같은 모양새”라고 했겠습니까?

윤 대통령의 다변과 만기친람은 검사 시절부터 형성된 언어 습관입니다.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을 할 때 부하들과 두 시간 동안 저녁 식사를 하면 1시간50분 동안 혼자 떠드는 그런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를 상관으로 모시고 일했던 검사들의 증언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사의재 교훈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말로 굴복시키려는 한 장관

말을 많이 하고 독하게 하기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윤 대통령 못지않은 것 같습니다. 한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한 장관 때문에 대거 반대표를 던졌다는 얘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체포동의 반대 이유를 한동훈 장관 탓으로 돌린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장관이 도대체 뭐라고 말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표결하실 범죄 사실의 핵심은,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송영길 후보 지지 대가로, 민주당 국회의원 약 20명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 범죄 사실에 따르면, 논리 필연적으로 그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기’ 계시고, 표결에도 ‘참여’하시게 됩니다. 최근 체포동의안들의 표결 결과를 보면, 그 약 20명의 표는, 표결의 결과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돈봉투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공정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국민들께서도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이제, 국민들께서 이런 상황을 다 아시고, 이 중요한 표결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6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습니까? 한 장관의 발언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한 장관은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 때문이라고 국민이 생각할 테니 민주당 의원들은 순순히 찬성 표결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을 굴복시키려 한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아마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장관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나 정책 결정을 하는 정무직 공무원입니다. 대통령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인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반대 표결과 별도로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말을 ‘찰지게’ 하기로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뒤지지 않습니다. 홍 시장은 지난 4월9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정치력 없고 초보인 대통령을 뽑아놓고 노련한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와 같은 대화와 타협을 해달라는 건 난센스”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듣는 윤 대통령은 무척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홍 시장은 과거 자신과 사이가 나쁜 당내 정치인들을 향해 “바퀴벌레” “고름” “암 덩어리” 등 독설을 퍼부은 적도 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5월11일 대구시청 동인청사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막강한 검사 권한, 말로 뿜어내는 이들

왜들 이러는 것일까요? 윤 대통령, 한 장관, 홍 시장의 공통점이 뭘까요?

검사, 그것도 특수부 검사 출신입니다. 검사들은 다 말을 함부로 할까요? 그럴 리가요. 대부분의 검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접 수사를 하는 특수부 검사들이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특수부 검사가 갖는 막강한 권한 때문입니다. 검사도 사람입니다. 국가가 일시적으로 맡긴 권한을 자신의 권력이나 능력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둘째, 일종의 ‘수사 기법’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검찰에는 피의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친 말이나 욕설을 하는 검사들이 있었습니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09년에 출판한 <불멸의 신성가족>이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건설공사 시행자였던 명성훈 사장이 검사에게 험한 욕설을 듣고 긴급구속된 뒤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도 그동안에 사업을 하면서 항상 회사에 가면 사장님 사장님 소리를 듣고, 사회활동도 다니면서 그래도 사람대우를 받고 다녔는데, 난생처음 그런 일을 당하니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니까 사람이 이상해지더라고요. 분명히 깜깜한 밤인데도 시야가 하얗게 보이는 거야. 서초경찰서까지 걸어가면서 보니까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이 하얀 판에 회색 사람이 지나다니는 걸로 보이는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저는 오래전 사회부에서 법조를 출입할 때 특수부 검사들이 험한 말과 거친 욕설로 고위 공직자나 기업인들을 무너뜨렸다는 ‘무용담’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검사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검사나 저 같은 기자나 참 한심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얼마 전 ‘정교모’(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라는 단체가 싱하이밍 중국대사와 만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짜장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던가’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2018년 9월 평양에 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우리 기업 총수들이 식사하는데,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폭언을 퍼부은 일이 있습니다. 남북 경협 속도가 느린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당사자가 아닌데도 기사를 읽으며 모욕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걱정입니다. 어쩌다가 우리 대학교수들의 언어 수준이 북한 당국자들의 의도적인 막말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혹시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의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현상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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