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女커플의 ‘36년 사랑’, 인천 성소수자 혐오 논란 불 지폈다(종합)

이정수 2023. 6. 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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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 출신 커플 다룬 다큐영화
19회 인천여성영화제 상영 놓고 갈등
市 “시민 의견 분분·우려 여론 있어…
철회 못 하면 탈동성애 영화도” 제안
주최 측 “차별과 혐오 부추기는 행정…
보조금 안 받고 우리 힘으로 치를 것”
새달 14~16일 영화공간 주안서 개최

19회 인천여성영화제 폐막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두 여성이 70대가 될 때까지 사랑해온 이야기를 담았다. 인천여성영화제 제공

수십년 전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던 여성 두 명이 70대가 된 지금까지 이어온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영화제 상영을 둘러싼 인천시와 주최 측의 갈등이 성소수자 차별 논란으로 번지면서다.

다음달 19회째 영화제 개최를 앞두고 있는 인천여성영화제가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던 인천시가 퀴어영화 배제를 요구한 것에 반발하면서 논란은 점화됐다.

영화제 측은 17일 공식 소셜미디어(SNS)에 “19회 인천여성영화제는 인천시 보조금지원사업으로 선정됐으나, 담당부서에서 실행계획서 승인을 앞두고 퀴어영화 배제를 요구했다”며 “이는 인천시가 앞장서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혐오 행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말했다.

영화제 측은 시의 요구를 “차별적·혐오적 행정”으로 규정하면서 “인천시의 지원을 거부하고, 19회 영화제를 우리 힘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조금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영화제 측은 당초 오는 13일에 시작돼 나흘간 진행 예정이던 영화제 기간을 하루 축소해 14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영화제 측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시 보조금을 지원받아온 영화제는 올해도 공모사업에 지원했고 지난 5월 최종 선정됐다.

그러나 보조금 승인을 앞두고 사업실행계획서 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와 영화제 측이 대립하는 일이 발생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영화제가 폐막작으로 선정한 퀴어영화 ‘두 사람’이 있었다.

반박지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은 베를린에 사는 노년의 커플 수현과 인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36년 전 수현은 재독여신도회수련회에서 인선을 처음 만나 꽃을 선물한다. 당시 기혼자였던 인선은 남편의 협박과 한인사회의 만류에도 사랑을 찾아 수현을 선택한다.

20대 때 언어도 통하지 않던 낯선 나라 독일에 와서 간호사로 일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70대가 됐다. 영화는 수현과 인선이 자신들과 같은 이방인을 위해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며 세월을 건너 사랑해온 이야기를 그린다.

인천여성영화제 측은 17일 인천시의 퀴어영화 배제를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보조금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오랜 세월 사실상 부부로 살아온 여성 간 사랑 이야기를 영화제에서 상영하겠다는 계획서에 시는 난색을 표했다.

시는 지난 12일 공문을 통해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 제외’를 영화제 측에 요청했다.

이어 14일 인천시 담당자는 영화제 측과의 통화에서 “퀴어 영화는 인천시민 모두가 동의하지 않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이 동성애를 트렌드처럼 받아들이고 잘못된 성 인식이 생길 수 있기에 교육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등 이유를 들며 퀴어영화를 상영에서 제외할 것을 재차 요청했다.

그러나 영화제 측은 이날 “인천시의 요구대로 상영작 리스트를 수정하지 않을 것이며 애초 계획한 상영작 그대로 영화제를 치를 것”이라며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또 “혐오 세력,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갈라치려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단단하게 서로를 연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인천시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영화제가 계속 잘 성장해서 인천의 여성 권익을 위한 영화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다만 퀴어영화 상영은 시민들 의견이 분분하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들 중에 우려하는 입장도 있어 그런 것들을 같이 고려해보자고 말씀드렸던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저희(시 측)가 제안한 것은 이 영화제가 소수의 인권 문제에 대한 것인 만큼, 그러면 동성애자에도 인권이 있고 요즘엔 동성애가 많아지다 보니 탈동성애를 하시는 분들도 있으니 양쪽의 인권에 대한 영화를 한 편씩 올려보자. 그래서 시민들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의 장을 가져보게 하는 건 어떨지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천시 입장은 영화제의 소수자 인권 존중, 다양성 존중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개인적으로 하는 건 관계없지만, (보조금은) 시민의 재원이므로 균형감 있게 쓰여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로 19회를 맞은 인천여성영화제는 다음달 14일부터 사흘간 인천 미추홀구 영화공간 주안에서 열린다.

이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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