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독이 몸부림칠 때…나의 ‘분신 로봇’이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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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고독을 기술로 해결한다.” 일본의 로봇 기업 오리연구소가 내거는 사명이다. 오리연구소가 로봇을 개발하며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평소 밖에 나가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맡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것이 불가능해지면 무력감을 느끼고 고독에 빠지게 된다. 이때 만약 ‘또 다른 나’가 있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나의 분신이 있다면, 밖에 나가지 않고도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독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2010년 오리연구소의 ‘분신 로봇’인 ‘오리히메’(OriHime)가 탄생했다. 오리히메는 머리, 몸통, 두 팔로 구성된 로봇인데, ‘파일럿’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한다. 파일럿은 태블릿 컴퓨터를 통해 로봇에 달린 카메라가 비추는 전경을 확인하고, 스피커와 마이크를 통해 사람들과 얘기 나눌 수 있다. 또 로봇의 머리를 움직여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가로저을 수 있다. 양팔을 들어 올리고 박수를 치는 동작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리연구소는 2021년 도쿄에 카페 ‘돈’(Dawn)을 열었다. 카페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음료를 파는 것이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오리연구소는 자체 제작한 여러 분신 로봇을 이곳에 가져다 놓고 50여명의 파일럿과 현장 직원들을 고용했다. 오리히메와 더불어, 바퀴가 달린 휴머노이드 ‘오리히메-디(D)’ 등이 있다. 로봇을 조종하는 파일럿은 주로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과 같은 난치병을 앓는 환자이거나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이다.
놀이공원 같은 로봇 카페
지난 5월 말 도쿄에 있는 돈을 방문했다. 가게는 식사 공간, 카페 공간, 바 공간 등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음료값이 포함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식사 공간의 테이블에는 오리히메가 비치돼, 식사를 하는 동안 로봇(에 연결된 파일럿)과 대화할 수 있다. 예약 없이 방문한 고객은 음료 주문만 할 수 있고, 테이블까지의 서빙은 오리히메-디가 맡는다. 고객은 로봇과 교류하는 경험을 얻기 위해 입장료를 내는 셈이니 돈은 카페보다는 놀이공원에 가깝다.
가게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서 있는 오리히메-디가 큰 소리로 인사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에 사는 파일럿 ‘요코’. 로봇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환하게 웃는 요코의 사진과 함께 소개가 적혀 있다. 요코는 주문을 받은 뒤 나의 이름을 묻고, 팔을 뻗어 악수를 청하고, “예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목소리는 요코의 것이지만 그와의 신체적 상호작용은 오리히메-디를 통해서다. 식탁에 앉아 있으니 또 다른 오리히메-디가 음료를 들고 다가왔다. 이번에는 파일럿 ‘유키’가 조종하는 로봇이다. 가게 안 소음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워지자, 유키가 재치 있게 목소리를 키웠다. 몇차례 되물음 끝에 함께 사진을 찍자는 그의 제안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셀카’ 각도를 만들었고, 유키는 카메라 렌즈를 향해 로봇의 머리를 움직여 자세를 취했다.
내 뒤를 이어 백인 4인 가족이 입장했고 이번에도 요코가 그들을 맞이했다. 가족이 자리를 잡자 식탁 위 오리히메의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대여섯살쯤 되는 아이들이 들뜬 목소리로 로봇에게 말을 걸었다. 큰 소리로, 또박또박, 천천히. 로봇이 대답할 때는 귀를 가까이 갖다 대고 숨을 죽였다. 멀리서 누군가 로봇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작은 로봇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소통하려는 아이들의 노력이 파일럿에게 전달된 것은 분명하다.
가게 안쪽 바 공간의 직원들은 동료의 생일을 축하하느라 분주했다. 기다란 탁자 위에 오리히메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앞치마를 두른 직원 두명이 작은 칠판을 들고 서 있었다. 칠판의 문구는 이랬다. “생일 축하해요. 료군과 ‘돈’에서 보낸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직원들이 로봇의 카메라 렌즈를 향해 칠판을 비추고 ‘손 하트’를 만들자 “오케이, 찰칵” 하는 파일럿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일 주인공인 료가 원격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듯했다.
로봇 너머에 사람이
‘상설 실험 카페’를 표방하는 돈에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사회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분신 로봇을 통한 관계 맺기와 새로운 방식의 사회 활동이 가능할지 시험하는 것이다. 돈을 찾은 사람들이 로봇과 교류하는 모습은 오리연구소의 가설대로, 외출하기가 곤란한 사람도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에도 파일럿은 로봇을 통해 고객을 응대하는 임무를 기어코 해냈다. 고객들 역시 로봇을 사이에 두고 파일럿과의 교류를 즐겼다. 그들은 영어와 일본어와 몸짓을 섞어 대화를 나눴다. “고맙다”, “미안하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이 오갔다. 사람과 기계가 나눌 법한 표현은 아니다. 멀리 있는 파일럿이 고독을 달래는 데 이런 대화가 조금은 도움이 됐을 테다.
이곳의 인간-로봇 상호작용은 사람들이 관계 맺는 대상이 로봇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객들은 로봇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로봇을 조종하고 있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로봇을 통해 나오는 파일럿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세웠다. 간혹 그것을 알아듣기 어려울 땐 정중히 되물었다. 로봇에서 나오는 소리 중 함부로 지나쳐도 되는 기계음 따위는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대답할 땐, 로봇을 통해 전달되는 자신의 목소리가 파일럿에게 가능한 한 뚜렷하게 닿도록 목을 가다듬고 힘차게 발음했다. 또 현장 직원들은 예쁜 말을 골라서 동료 직원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당신과 함께해서 좋았다고, 바로 눈앞의 로봇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먼 곳의 파일럿에게 건넸다. ‘로봇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간단한 사실이 그곳의 모든 이들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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