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결함 따위야”…‘묻지마 그랜저 사랑’, MBTI에 대박비결 있다 [세상만車]
출시이후, 벌써 결함 14건
끄떡없는 인기비결 ‘ESFP’
현대자동차 그랜저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신형 그랜저가 출시된 뒤 “그 돈(5000만원대)이면 벤츠 산다”는 비싼 가격 논란에도, 벌써 14건에 달하는 결함 속출에도 대박 행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함 논란이 계속 터졌지만 오히려 판매대수는 증가했고, 신차 시장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대체불가’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랜저는 가격·결함 논란에도 판매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2위로 밀려난 굴욕을 벌써 씻어냈다. 이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기아 쏘렌토에 내준 ‘국민차’ 자리를 다시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매경닷컴이 올 1~5월 국산차 판매실적을 분석한 결과, 그랜저는 5만1442대 판매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8% 증가했다. 쏘렌토 판매대수는 2만9580대다. 전년동기보다 13% 늘었지만 1위 자리에서 멀어졌다.
경쟁차종인 기아 K8도 지난해보다 선전했지만 ‘타도 그랜저’는 사실상 실패했다. 판매대수는 전년동기보다 29% 증가한 2만686대다. 그랜저가 2배 이상 많이 팔렸다.
기아 카니발이 판매대수 3만2992대로 2위를 기록하며 쏘렌토와 K8 대신 그랜저 추격에 나섰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신차 판매 촉진제 역할을 담당하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그랜저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국토교통부 데이터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올 1~5월 중고차 실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그랜저는 중고차 실거래 톱5에 2개 차종이 포함됐다. 그랜저 HG(3738대)가 2위, 그랜저 IG(3361대)가 4위를 기록했다.
1위는 기아 모닝(3899대), 3위는 쉐보레 스파크(3421대), 5위는 기아 레이(2394대)다. 모두 경차다. 생애첫차·세컨드카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경차는 신차 시장보다 인기높은 대표 차종이다.
중고차 실거래 세단 부문 1·2위는 모두 그랜저다. 또 가솔린 중고차 실거래 순위에서는 그랜저HG가 모닝과 스파크에 이어 3위를 달성했다.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차량 부문에서는 신차급 그랜저들이 1·2위를 모두 차지했다. 그랜저 IG 하이브리드가 1위, 뉴 그랜저 IG 하이브리드가 2위를 기록했다.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불이 붙은 가격·결함 논란에도 그랜저가 넘사벽(넘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이 된 비결은 ‘MBTI’(성격유형검사)로 파악할 수 있다.
“이래서 다들 그랜저 그랜저 하는구나”라고 끄덕이게 되는 MBTI 유형은 ‘ESFP’다.
이 세그먼트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 E세그먼트 차종은 더 럭셔리하지만 부유하지 않으면 구입하기 어려운 F세그먼트(럭셔리카급) 대형 차종보다 많이 팔리고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A세그먼트(경차급), B세그먼트(소형차급), C세그먼트(준중형차급), D세그먼트(중형차급)를 끌어주고 F세그먼트도 밀어준다.
‘중원’ E세그먼트를 장악해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면서 수입차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당연히 자동차 브랜드들은 사활을 걸고 E세그먼트를 공략한다. 차종이 주는 심리적·사회적 이미지에도 공들인다.
국내에서도 E세그먼트 시장은 ‘프리미어 리그’에 해당한다. 수입차 리그에서는 벤츠와 BMW가 E클래스와 5시리즈를 각각 앞세워 ‘사생결단’ 경쟁한다.
국산차 중에서는 그랜저, K8, 제네시스 G80가 E세그먼트 차종이다. 그랜저는 국내 E세그먼트 대표주자다.
제네시스 G80은 그랜저와 함께 국내 E세그먼트 시장을 이끌면서 동시에 글로벌 E세그먼트 시장을 공략중이다.
그랜저 판매신화도 ‘성공’(Success)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현대차도 성공 이미지를 CF를 통해 적극 전파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 말에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엄마, 차 좀 보소. 성공한 겨?”
2009년과 2019년 10년 차이를 두고 TV에 방영됐던 그랜저 CF다. 두 CF는 물질만능주의를 자극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반대로 성공의 상징으로 웅장, 위엄, 위대함이라는 뜻을 지닌 그랜저를 잘 표현했다는 상반된 평가도 받았다.
CF가 비난받았던 이유도 그랜저 존재감이 커서다. 존재감이 없었다면 CF가 관심받을 일도 없다.
사장차 자리를 에쿠스와 제네시스에 넘겨준 뒤 직장에서 ‘별’(Star)을 달면 타는 임원차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경우 별 1~2개 임원은 그랜저나 K8을 받는다. 대부분 그랜저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랜저는 제네시스가 2016년 브랜드 독립한 뒤에는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성공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그랜저=성공’ 등식을 알려주는 설문조사가 나온 적도 있다.
중고차 직영기업인 케이카가 지난 2020년 1월 발표한 ‘설 명절 고향 갈 때 타고 싶은 금의환향 자동차 조사’에서 그랜저는 45.2%라는 압도적인 응답률로 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3040대 성공의 상징’, ‘국내 대표 세단 등 명성 있는 차’ ‘국산 동급 세단 중 가장 고급스럽고 승차감 좋아’ 등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그랜저는 1985년 첫선을 보인 뒤 3세대까지는 ‘사장차’로 인지도를 쌓고 4·5세대에서는 임원차이자 40~50대 ‘아빠차’로 거듭났다. 아빠차는 패밀리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입구집단이자 큰손은 40~60대다. 패밀리카 시장을 주도하는 아빠 연령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민등록 인구는 5143만9038명이다. 연령대별 비중을 살펴보면 50대(16.7%)가 가장 크다.
그 다음으로 40대(15.7%), 60대(14.4%), 30대(12.9%), 20대(12.5%), 70대 이상(11.8%), 10대 미만(6.9%) 순이다.
인구가 많은 40~60대는 자동차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세대다. 이들 세대가 패밀리카로 그랜저를 선호한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50대는 신차 시장에서 그랜저(6277대)를 가장 많이 샀다. 2위는 제네시스 G80(5398대)다.
60대도 쏘나타(9003대) 다음으로 그랜저(8926대)를 선호했다. 다만 40대에서는 쏘렌토와 캐스퍼 등 SUV와 경차에 밀려 그랜저를 포함한 세단은 톱5에 들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개인 구매자가 가장 선호한 차종은 그랜저(3만282대)다. KG모빌리티(구 쌍용차) 토레스(2만683대)가 2위다.
그랜저 1위에 가장 기여한 성별·연령대는 40~60대 남성이다. 40대 남성은 그랜저(4404대)를 카니발(5266대) 다음으로 많이 샀다.
50대 남성은 그랜저(8449대)를 가장 선호했다. 2위 쏘렌토(4379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구입했다.
60대 남성 선호 1위도 그랜저(6566대)다. 2위 토레스(2950대)와 3위 쏘렌토(2820대)보다 2배 이상 많이 샀다.
그랜저는 아버님·어머님(Parents) 차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판매대수는 40~60대보다 적지만 70대 이상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70대 이상 남성은 그랜저(1637대)를 가장 많이 샀다. 그 다음이 쏘나타(1246대)다. 스포티지(572대)다.
70대 이상 여성도 차를 구입할 때 그랜저(300대)를 1순위로 꼽았다. 아반떼(255대), 모닝(134대)가 그 다음이다.
“라떼는 성공하면 탔다”는 향수, SUV보다 안락한 승차감, 나이에 어울리는 품격 등이 ‘부모님’ 세대의 구매욕구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떼 향수는 특정 계층이 소비한 상품을 구입하면 자신도 해당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파노플리(Panoplie) 효과와 결합했다.
현재 70대 이상이 사회적 성공을 갈망했던 80~90년대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탔던 그랜저를 지금 사더라도 자신의 가치나 품격이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여긴다.
ESFP 효과로 그랜저를 사기로 이미 마음먹은 소비자들은 돈을 좀 더 보태거나 할인받으면 벤츠 E클래스를 살 수 있다는 가격논란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출시 이후 연달아 터진 결함 논란이 터졌지만 품질 문제 대부분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가능하다는 말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랜저만 올랐나, 요즘 다 비싸졌지”, “신차에 결함은 당연하지”라며 “내 눈에는 그랜저만 보인다”는 반응을 보인다. 자신의 믿음이나 결정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ESFP가 연쇄작용으로 일으킨 후광·확증편향 효과는 그랜저를 ‘대체불가’ 국민차로 만들고 있다.
단, 그랜저 품질논란을 현대차가 빨리 종식시키지 못하면 그랜저 판매는 물론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와 수익구조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공 이미지가 품질논란을 방어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다다르고 있어서다. 자칫 37년간 구축해온 ‘성공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그랜저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다. 그랜저는 내연기관 플래그십 세단의 대표주자로 수익성도 좋아 현대차의 미래 모빌리티 투자에도 기여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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