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초’ 누명 불구, 질긴 생명력 民草의 상징 개망초꽃[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6. 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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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잡초 취급 받지만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 화려함까지 민초의 상징
개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 망국초, 왜 풀, 개망풀, 계란꽃으로도 불려
구한말 일본에서 귀화해 ‘나라 망친 풀’ 억울한 누명
열강 자원쟁탈전, 지구 생태계 교란 ‘식물사회 세계화’ 시기 귀화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계란 프라이 모양 탓에 계란꽃으로 불리는 여름꽃 개망초꽃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2020년 6월10일 대통령실(옛 국방부) 무궁화동산에서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개망초꽃은/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이곳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개망초꽃은 핀다//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그 모습을 늦여름 한 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어느 돌길에 무더기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꽃카페 개망초 사마귀 2021 0614_214625 하얀 개망초꽃에 애기 사마귀가 앉아 있다. 2021년 6월14일 대통령실(옛 국방부) 무궁화동산 촬영

안도현 시인의 시 ‘개망초꽃’에는 잡초 같은 인생, 민초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녹아 있다.

개망초는 너무나 흔한 잡초 중의 잡초로 강한 생명력과 왕성한 번식력을 과시한다. 황폐화된 땅이나 휴경지를 금방 점령해 버린다. 하천부지, 나무 베어낸 산이나 묘지, 도심지 가리지 않고 전국 어디서든 잘 자란다.

국화과 개망초속에 속한 해넘이한해살이 풀이다. 망초와 이름이 비슷하며 같은 국화과다. 하얀색의 자그마한 꽃이 피며 묵은 밭 지천에 흰 눈이 내린 듯 화려하게 수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화사한 작은 들꽃이지만 너무나 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 못받고 잡초 취급 받는다.

6월의 청계천은 하얀색과 연보라색 개망초가 지천에 늘려 있다. 6월3일 청계천 징검다리에서 촬영

개망초는 망초에 흔하고 쓸데없는 의미인 ‘개’가 붙어 개망초가 된 잡풀이다.개망초는 망국초, 왜 풀, 개망풀로도 불린다. 토종식물이 아니라 북아메리카 원산지이며 1910년 한일합방 즈음에 들어온 귀화식물로 구한말 개망초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며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졌다는 이유로 이름에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란 뜻으로 ‘망초(亡草)’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달았다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나돈다. 망초라는 이름은 처음에 ‘망쵸’ 또는 ‘망국초’로 기록된 바 있다. 개망초는 앞서 기록된 망초란 이름에 ‘개’가 더해진 것이다. 1921년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 속에 나오는 일본명 이누요메나(犬嫁菜)4)의 ‘개(犬)’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개망초의 방언 ‘왜 풀’ 역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라는 도입 경로 정보를 알려준다. 북미 원산으로 개화기 이후에 귀화한 신귀화식물인 망초는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말인 1865년경 관상용으로 도입됐다가 탈출해서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초여름인 6월3일 청계천변 여기저기에 개망초꽃이 피어있다.

망초가 우리나라에 귀화해 온 시기는 조선이란 국가가 망해가는 구한말이기도 하지만, 이 때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자원쟁탈 파고가 거셌던 때다. 당시는 지구 생태계가 과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식물종 전파와 함께 식물사회 세계화가 일어난 시점이기도 했다. 망초·개망초가 전세계적으로 전파된 게 진짜 원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멸망과 맞물리면서 망국초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셈이다. 많고 많은 신귀화식물종들 가운데 유별나게 이 종을 그렇게 망할 ‘망(亡)’ 자의 망초라고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는 설에 대한 학술적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 문헌상으로 ‘망초’는 원래 망초(亡草)가 아니라 ‘잡초, 풀 우거질’ ‘망(莽)’의 망초(莽草)라는 기록도 있다.

흰색과 연보라색 빛깔이 조화를 이룬 개망초. 2020년 6월10일 대통령실 무궁화동산 촬영

이내빈 시인 첫 시집 제목이기도 한 시 ‘개망초 너는 왜 그리 화려한가’에서 "잡초에 섞여 잡초같이 피는 꽃/바람결 마디마디 향기 나르며/이글거리는 태양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와관련 시인은 2021년 칼럼 ‘잡초에서 얻는 교훈’ 글에서 개망초의 아름다움을 ‘초라한 화려함’이라고 했다. 시인은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잡초. 비바람에 용광로 같은 태양까지 최악의 조건을 무릅쓰고 순결한 하얀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는 어떠한 풍파고 이겨내며 꿋꿋하고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또 "가냘픈 몸매에 여릿한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는 눈이 시리도록 화려함으로 다가왔다"고 노래했다.

어른 팍뚝보다 큰 잉어가 노니는 청계천 변에 초여름 개망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6월3일 촬영

개망초는 망초보다 일찍 성장하고 꽃이 피며, 적어도 보름 이상, 길게는 한 달 이상 빠르다. 묵정밭에서 개망초는 초여름까지 완전히 우점하며, 그 뒤를 이어서 망초가 길게 자란다. 망초는 개망초 만큼 서식 범위가 넓지 않다. 개망초는 농촌지역뿐만 아니라, 특히 도시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종이 될 만큼, 도시 산업지역에서도 흔하게 관찰된다. 망초는 그렇지 못하다. 개망초의 적응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개망초꽃은 바람부는 데로 흔들리고 뽑으면 뽑히는 가녀린 식물이지만 뿌리박힌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고지는 흰 꽃잎 가장자리에는 계란 노른자를 닮은 동그란 통꽃까지도 이쁘다.

이른 봄에 어린 잎을 따서 데친 다음 식용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꽃을 따서 말려 꽃차로 이용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염료식물이기도 하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 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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