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장동료 다 잘랐다"…인자했던 회장님 돌변한 까닭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2) 꺾이지 않는 마음
이나모리, 파산위기 JAL 1만여명 구조조정
머스크 ‘적자’ 트위터 인수 후 수천명 해고
“대선(大善)은 비정... 경영자는 무거운 자리
위기에 자신을 던질 ‘절박한 사람’에 자격”
#1 “30년 동료들을 내 손으로 자르라니…”
우에키 요시하루는 34년간 비행기 조종간을 잡았다. 조종사 외길 인생이었다. 3년 뒤 명예롭게 은퇴할 계획이었다. 일본항공(JAL)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평생을 바친 회사였다. 그냥 도망칠 수 없었다. 연봉 절반이 깎인 채 회사 재건을 담당하는 임원이 됐다. 구조조정 업무를 맡은 지 6개월 만에 정신이 피폐해졌다. 외부에서 온 회장에게 털어놓았다. “저는 이 일을 못 할 것 같습니다. 괴롭습니다”
‘팔순의 왕회장’ 이나모리 가즈오는 물었다. “우에키 본부장, 자네의 대의(大義)는 무엇인가. 왜 조종석에서 내려왔는지 생각해보게. 괴롭다고 주저앉으면 동료와 후배를 도울 수 있는가. 망해가는 회사를 구할 수 있는가?”
#2 “머스크 대표님, 과감한 조치가 해고였나요?”
지난 4월 미 샌프란시스코 트위터 본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BBC 기자 제임스 클레이턴,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갑작스러운 인터뷰였다.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 이야기로 시작했다. “트위터는 연간 30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파산하기까지 넉 달 남짓 남았더군요. 즉시 과감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이 회사는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기자는 물었다. “그래서 많은 직원을 해고했나요? 직원들은 그 일이 즉각적으로 결정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머스크는 항변했다. “회사는 비용을 줄여야 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으면 모두 끝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나모리 가즈오와 일론 머스크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글로벌 세라믹 기업 교세라와 일본 2위의 이동통신사 KDDI를 창업했습니다. 78세에 파산 위기의 JAL을 살릴 구원투수로 경영에 복귀, 1년 만에 2조3000억엔의 부채를 청산하고 V자 회복을 이뤘습니다. 지난해 8월 향년 90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카르마 경영’ ‘아메바 경영’ 등으로 알려진 독자적 경영철학을 구축했습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이에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지난 10일 자 <테슬람이 간다 : ‘경영의 신’과 테슬라> 1편은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을 다루면서 머스크와 비교했습니다. 일각에선 경영자의 인의(仁義)를 강조한 이나모리와 직원들을 가혹하게 압박하는 머스크는 전혀 결이 다른 인물이라고 지적합니다. 두 남자가 창업자로 큰 성공을 거둔 것 외에 공통분모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나모리에게서 ‘큰형님 같은 덕장’의 면모만 본 것입니다.
이나모리는 각론에서 보면 냉정한 경영자였습니다. JAL처럼 수십년간 방만 경영이 굳어진 조직은 그가 혐오하는 부류에 가까웠습니다. 회사 부채가 20조원 넘게 쌓였지만, 비행기는 여전히 뜨고 내렸습니다. 사내 노조가 무려 8개였습니다. 당시 JAL 직원들은 대부분 회사의 파산 위기를 뉴스를 보고 알 정도였습니다. 일부는 체념했고, 일부는 불안해하면서도 ‘설마 이 큰 항공사가 망하겠느냐’는 도덕적 해이가 팽배했습니다.
비정함을 감내할 수 있는가
새로운 계획의 성취는 불요불굴의 마음에서만 이뤄진다. 그러니 오로지 열망하라. 긍지 있고 강하게 오직 한 길만.
- 일본 사상가 나카무라 덴푸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았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았다.
얼핏 보기엔 일하기 편하지만, 장래가 없는 회사는 유능한 직원부터 빠져나갑니다. 머스크의 회사가 업무 환경이 가혹하다는 평판을 받으면서도 전 세계 인재가 몰리는 이유입니다. 글로벌 인적자원(HR) 컨설팅 기업 유니버섬에 따르면 작년 미국 공대생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1‧2위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였습니다.
기어서라도 현장에 가라
이나모리와 머스크는 모두 기술에 정통했습니다. 이나모리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창업했고, 머스크는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과정까지 이수하려 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사업가가 아닌 엔지니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현장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현장 경영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 머스크입니다. 2016년 테슬라가 공개한 준중형 세단 모델3는 폭발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1년 만에 사전 예약 50만대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생산이었습니다. 머스크는 일주일에 5000대 생산 목표를 내걸었었습니다. 주주들에겐 2018년 50만대를 제작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일방적인 발표에 공장 관리자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자동화를 위해 대량으로 들여온 로봇 라인이 말썽이었습니다. 결국 공장 옆에 대형 천막을 치고 수작업으로 생산을 병행했습니다. 머스크는 아예 공장 바닥에서 쪽잠을 자며 현장 직원들을 독려합니다. 2018년 여름, 기어이 주당 5000대 생산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머스크를 직접 취재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팀 히긴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프리몬트 공장에서 만난 머스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티셔츠는 사흘째 갈아입지 못했다. 그의 책상 옆 의자엔 몇 시간 베고 잔 흔적이 보이는 베개가 놓여 있었다. 모델3 생산이 1년이나 늦어진 상태였다. 그는 테슬라가 파산 일보 직전이라는 보도에 이를 악물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새로운 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신념 하나로 이 모든 걸 버티고 있어요”
이나모리는 현장 경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경영자는 누구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엄격한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엄격한 요구만 하면 관계가 삐걱거리기 쉽다. 그래서 누구보다 현장을 정확히 알고 지시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가 사무실에만 앉아 있다면 아무리 경영이념을 강조한들 직원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회사에 생명을 불어넣을 존재는 최고경영자뿐이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어떻게 회사는 강해지는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기꺼이 가장 먼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 이나모리 가즈오 『왜 리더인가』
JAL은 지난 60년간 조종사 출신이 사장이 된 전례가 없었습니다. 경영이나 재무통들이 독차지하던 자리였습니다. “회장님, 저는 그럴만한 지식도 경험도 없습니다”(오시니 야스유키 『이나모리 가즈오 1155일간의 투쟁』 )
이나모리는 회장 취임 후 30명의 JAL 임원을 지켜봤습니다. 그는 교세라 시절부터 사장을 선택할 때 능력보다 품성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경영자란 회사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절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던지는 희생 없인 불가능합니다.
최후의 도전을 앞둔 팔순의 노장은 답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였어. 절박한 마음, 그 마음만이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저력일세”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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