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던 아이가 친부모를 찾았습니다"

2023. 6. 17.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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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나를 죽었다고 거짓말해 입양 보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미아 리 소렌슨 해외입양인]
한국사회봉사회의 제 입양서류에 따르면, 저는 1987년 6월 28일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서 32주차에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나의 친생모와 친생부는 자발적으로 입양 보내기 위해 제 친권을 포기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셋째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덴마크로 보내기 전에 6개월 반 동안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다음 부분은 코펜하겐 공항에서 도착해 덴마크 부모님이 픽업하는 작은 꾸러미로 시작됐습니다. 양부모님은 공정한 입양을 진행한다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 평판 때문에 한국에서 저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글쎄요, 우리 모두는 더 현명해졌습니다.

2021년 1월, 저는 DNA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습니다. 전 지난 15년 동안 친가족을 찾았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고, DNA 검사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입양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족찾기를 신청했지만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설명은 항상 같았습니다. 어쨌든 내 파일에 있는 정보는 가짜였습니다. 경찰과 지방정부를 통해서 찾아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족찾기 포기하고 수사를 그만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2022년, 저는 드디어 DNA 등록 중 지금까지 가장 높은 일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2.98%였고 저는 미국에 있는 사촌뻘 친척을 찾았습니다. 그는 내 평생동안 알게 된 생물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그 먼 사촌동생과 그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친가족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모, 사촌 및 다른 친척을 통해 내 한국인 가족을 추적하기 위한 조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여름, 그들은 한국에서 내 입양파일에 적힌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부부를 찾았습니다. 저는 너무 설레고 당장 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 부부에게서 자신들이 맞는지 확인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고, 마침내 가을에 사촌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국인 이모와 한국인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어머니, 두 명의 언니, 남동생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저도 조금 놀랐지만 그들이 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저를 찾지 않았고, 어쩌면 저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유령 같았고, 내가 갑자기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완전히 다른 버전, 제 인생의 진정한 버전,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입양될 당시의 필자의 모습. ⓒ필자 제공

우리 이야기

제가 태어난 날, 어머니는 저를 출산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겨우 임신 25주차였습니다. 어머니는 출산 직후 정신을 잃었고 깨어 났을 때 내가 사산돼 의사들이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설명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을 늦은 유산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오지 않았고, 따라서 입양을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음날 외할머니와 이모가 병원에 ​​와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내 시신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날 어머니에게 퇴원하라고 말한 의사들에 의해 병원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자, 시간이 흘러 이제 친가족과 드디어 만났고, 저는 입양기관, 고아원, 탐욕스러운 의사 등이 만든 연속적인 거짓말을 발견했습니다

이 잔인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명백히 제 출생 기록은 없습니다. 제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봄을 의미하는 것 같고 4월 말이나 5월 초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덴마크에 입양 보내진 때가 6.5개월이 아니라 9개월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조산아로 살아남은 것이 기적입니다. 내가 조산아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25주차에 태어났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는 인공 호흡기에 의존했고, 튜브를 통해 영양분이 공급됐으며, 돌보는 사람과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접촉을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저는 흉터가 있고 오른쪽 눈이 실명됐으며 복잡한 외상후증후군(PTSD)을 앓고 있습니다.

내 입양서류에는 의료기록과 내 배경에 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부모의 이름, 내가 태어난 도시, 두 명의 누나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그 정보 중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내 입양서류에는 내가 실제로 태어난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또 내가 태어난 직후 고아원에 왔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입양기관은 나중에 새로운 설명을 해주었다.

입양기관에서 새롭게 밝힌 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보육원에 인수되었고, 그 다음에는 서울의 입양기관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더 큰 병원으로 인수 됐습니다. 모두 내가 태어난 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2주차에 태어난 아기도 출생 당일 350km를 이동할 수 없고 병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입양기관은 너무 많은 핑계를 대고, 무엇보다 아무런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들은 당시 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고 주장하며, 내 친부모가 거짓 정보를 제공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그랬을 수도 있다, 그들은 정말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친가족과 상봉했기 때문에 입양파일이 아닌 다른 버전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힌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던 당시 사실 꽤 부유했고 그들이 내게 필요한 모든 치료비를 지불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로 당시에 가족 사업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사라져 매우 슬펐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기억합니다.

혹시 어머니가 나를 조산해서 이렇게 됐을까요? 아니면 나는 살아서 태어난다면 입양 기업이 이미 보내기로 약속한 아기로, 태어나자마자 보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의사들이 저를 대신해 기꺼이 감수할 위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고한 아기의 생명에 대해 비인간적인 결정을 내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나를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국 가족에게서 나를 훔치고 입양을 위해 팔았습니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누가 이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답이 없는 질문이 너무 많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슬픕니다.

한국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입양 진실에 대한 조사를 신청한 것을 통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료 입양인들이 원한다면 실제 입양파일과 배경에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이 다른 모든 방법을 다 고려한 뒤 최후의 수단이 됐으면 합니다. 저는 단지 진실과 정의를 원합니다.

▲이 글을 쓴 미아 리 소렌슨 씨. ⓒ필자 제공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미아 리 소렌슨 해외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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