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교육 개혁 하려면 교육부 관료 ‘過激하게’ 줄여야

강천석 고문 2023. 6. 1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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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 先導 국가가 그 世紀의 主役 됐다
수능, 대학정원 미달 시대에 입시지옥 빚는 모순

윤석열 대통령이 20대 대통령인데 이주호 교육장관은 61대 장관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70년 동안에 장관이 예순한 번 바뀌었다.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2개월이다.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이 무색하다. 지금 외교장관은 40대 장관이고, 국방장관은 48대 장관이다. 한국 교육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대입 수능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취임 이후 첫 입시 관련 발언이다. 대입 수능은 정부 교육 정책 가운데 가장 소비자가 많은 부분이다. 소비자인 학부모 반응은 때로 격렬하다. 학부모의 수능에 대한 관심은 인생의 한 시기에 집중된 일종의 ‘계절적(季節的) 수요’다. 자식이 입시에서 해방되는 순간 학부모 관심은 사라지고, 새 학부모들이 핏발 선 눈으로 대입 수능을 감시한다.

대통령의 대입 수능 언급은 첫 발표 이후 두 번, 세 번 보충 설명을 거쳐 무해무득(無害無得)한 지시로 물타기 됐다. 현행 입시 제도는 학부모의 ‘교육 투자’를 ‘교육 투기’로 과열(過熱)시켜, 불가능한 내 집 마련, 열악한 육아, 보육 환경과 얽혀 결혼 기피, 출산 기피를 불러오는 국가 존립(存立) 문제가 돼버렸다.

한때 한국 학부모들 교육열은 경제 기적의 동력(動力)으로 외국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지금은 학부모의 과잉(過剩) 교육열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 개혁을 저해(沮害)하는 요인으로 비판받고 있다. 교육 개혁 범위가 수능 성적 중심 ‘정시’냐 학생부 내신 중심 ‘수시’냐 하는 울타리 안에 갇혀 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학부모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수능 시험지를 받아들고 느끼는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수능 국어 시험지는 A3 용지 16장에 문제가 빼곡히 인쇄돼 있다. 이걸 제한 시간 80분 안에 풀어야 한다. 수학은 한 문제에 3분 이상 매달리면 시간 부족이다. 수능 시험장에서 사고(思考)하는 능력이 작동하면 필패(必敗)다. 입시 학원은 사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정답을 고르는 기술을 파는 산업이다. 대통령이 이런 수능 방식에 집착하는 교육 관료와 학원 산업을 ‘카르텔(담합·談合)이라 표현한 것은 근거가 있다.

상급 학교 진학 시험은 그런 교육을 받을 기초가 돼 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금 수능은 대학 정원(定員)보다 많은 응시자를 떨어뜨릴 근거를 만드는 장치로 변질됐다. 대학 정원보다 응시자가 많은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곧 대부분 대학에 정원 미달 사태가 닥칠 것이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면 교육부가 대학 입시·대학 행정에서 손을 떼게 만들어야 한다. ‘과격할 정도로’ 교육 공무원 숫자를 줄여 복지를 비롯한 다른 분야로 돌려야 한다. 공무원은 손(手)이 남아돌면 불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창안(創案)해 일거리를 만든다. 수능은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에서 더 높은 교육을 받을 기초가 돼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로 바꿔야 한다. 그들 가운데 자기 대학 특성과 수준에 맞는 학생을 뽑는 것은 각 대학이 할 일이다.

교육 개혁을 선도(先導)한 나라가 다음 세기의 주역(主役)이 된 게 교육의 역사다. 18세기 중·후반 독일 괴팅겐대학·할레대학에서 도입한 세미나(seminar) 수업 방식과 박사 제도(Ph. D.)는 곧 세계 대학을 바꿨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독일 수업 방식 위에 세워진 대학이다. 일본 대학도 토대가 독일식이다. 노벨상이 1901년 제정돼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까지 자연과학 부문 독일 수상자 숫자는 미국과 영국을 합한 숫자보다 많았다. 20세기 주연(主演)은 독일이 될 뻔했다는 게 헛말이 아니다.

200여 개 한국 대학에서 연구·교육 실적 부진으로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는 10년 합해도 10명이 채 안 된다. 그런 그들이 2년, 4년마다 학장·총장을 뽑는다. 개혁의 영(令)이 설 수가 없다. 하버드 대학을 오늘의 위치로 끌어올린 엘리엇 총장은 40년(1869~1909), 시카고 대학을 작은 선교사 교육기관에서 미국 대표 대학으로 키운 허친스 총장은 22년(1929~1951)간 총장을 지냈다. 선거로 뽑는 자리 가운데 권위(權威)와 힘이 같이 가는 자리는 로마 교황(敎皇)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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