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5개월 앞두고 ‘시험 난이도’ 혼란

박성민 기자 2023. 6. 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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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논란]
尹 “공교육 벗어난 문제 배제” 발언에
수험생-학부모, 수능 출제방향 혼선
교육부 “공정한 수능 지시한 것” 진화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불과 155일 앞두고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교육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15일에는 학교 수업을 벗어난 어려운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했다가, 하루 뒤(16일)에는 ‘공정한 변별력’이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험생의 절박함을 헤아렸다면 나오지 않았을 즉흥 발언들”이라고 비판했다.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브리핑에서 처음 공개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은 출제에서 배제하라”였다.

몇 시간 뒤 대통령실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출제하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로 발언을 수정하며 사교육 비판에 중점을 뒀다.

수능이 쉽게 출제될 것이란 보도가 이후 이어지자 16일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에서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 발언을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로 다시 수정했다. 오후에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대통령 발언은) ‘공정한 수능’에 대한 지시였다”고 브리핑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입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생긴 혼란”이라고 지적했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 부채질” vs “변별력 떨어지면 대입 혼란”

尹 수능 발언에 교육현장 논쟁 커져
“배점 큰 고난도 문항 탓 학생들 고통”
“난도 낮추면 논술-면접 사교육 늘것”

이달 1일 서울 송파구 방산고에서 한 고3 학생이 6월 모의평가 시간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부는 해당 시험 일부 과목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이 출제됐다고 16일 밝혔다. 동아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이 알려진 15, 16일 이틀간 교육 현장에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11월 16일 치러질 올해 수능 난도를 놓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출제 방향에 따라서 입시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국어 비문학 지문’ ‘과목 융합형 문제’ 등이 사실상의 출제 ‘가이드라인’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올해 수능은 물수능(쉬운 수능) 기정사실” 등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 수능 난도 낮아지나… 찬반 대립

먼저 대통령이 교과 과정 외의 문제는 출제하지 말라고 지시한 만큼 올해 수능 난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교육계의 논쟁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초고난도 문항’ ‘킬러 문항’이기 때문이다.

수능을 지금보다 쉽게 내야 한다는 한 입시 관계자는 “입시학원들은 배점이 큰 고난도 문항 풀이법을 수능 전략으로 가르치며 상위권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을 부추겨 왔다. 한 과목에 겨우 1, 2개 있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많은 학생이 고통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김용진 동국대 사범대 부속 영석고 교사는 “수능이 30년간 이어오면서 기존 지문이 고갈됐고, 더 어려운 지문을 가져오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다.

반면 수능 난도가 갑자기 낮아지면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홍문표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쉬운 문제 위주로 출제되면 변별력이 떨어져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 논술, 면접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이를 기화로 학원들이 ‘논술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며 오히려 사교육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 변별력이 약해지면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재수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성급한 발언”, 학생들 “혼란”

대통령의 발언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됐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대통령이 언급한 국어 비문학 문제 난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수학의 중요성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주요 대학 입학처장은 “최근 정부나 대학 모두 융합 사고, 융합 인재, 융합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런 취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교과 과정 외의 문제를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해 ‘공정한 수능’을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출제 과정에서는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쉽게 말하면 어려운 문제, 즉 ‘킬러 문항’을 내지 않고도 최상위권, 상위권, 중위권 학생을 9등급으로 분별하는 시험을 내겠다는 말”이라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오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성급히 나왔다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제기됐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수능 출제 방향까지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양한 문제가 얽힌 입시를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수능을 자격고사처럼 만들어야 공교육이 산다”고 말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입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보다는 줄이고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되는, 큰 방향성에서 그렇게 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입시 현장의 혼란도 계속됐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시(수능 위주) 재수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 했는데 망했다” 등의 글이 잇달았고, 강남 학군 커뮤니티에서는 “물수능이면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내신도 불리한데 지방으로 옮겨야 하나” 등 우려가 쏟아졌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한모 양(19)은 “건드릴수록 부작용이 나오는 게 입시제도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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