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묻다

남정훈 2023. 6. 1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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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13일간 바레인에 다녀왔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챙겨본 축구팬이라면 바레인이란 나라 이름은 익숙하겠지만, 바레인이 중동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는 생소할 것이다.

바레인도 중동에 위치한 나라답게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국가지만, 히잡이나 차도르 등 중동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을 보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를 비롯해 중동 젊은이들이 술과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바레인에 놀러오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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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13일간 바레인에 다녀왔다.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2023 아시아 남자 클럽배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V리그 챔피언 대한항공의 경기를 풀기자로 취재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챙겨본 축구팬이라면 바레인이란 나라 이름은 익숙하겠지만, 바레인이 중동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는 생소할 것이다. 나 역시 이번에 바레인이 아라비아반도의 작은 섬나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레인도 중동에 위치한 나라답게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국가지만, 히잡이나 차도르 등 중동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을 보기 쉽지 않았다. 서구적인 복장의 여성이 더 많았다. 복장에서 미루어볼 수 있듯 다른 중동에 비해 여성의 사회 참여도 자유로운 편이며, 일부일처제가 보편화되어 있다고 했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이슬람 국가에선 엄하게 금지하고 있는 술과 돼지고기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실제로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를 비롯해 중동 젊은이들이 술과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바레인에 놀러오는 일이 많다.

바레인은 가장 개방적인 국가지만, 정작 정치에선 억압이 상당히 강한 왕정 국가였다. 명목상은 입헌군주제지만, 군주의 권한이 엄청 커서 사실상 전제국가나 다름없다.

호텔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하다 한 교차로를 지나던 중 현지 가이드가 “이곳이 2011년 ‘아랍의 봄’ 때 민주화 시위하던 광장이었는데, 실탄까지 쏴서 진압했죠. 이후 시위를 못하게 교차로를 만들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가이드는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바레인에 왔다가 현지 남자를 만나 결혼해 4남매의 엄마가 된 한국 사람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바레인 사람들도, 바레인에 사는 외국인들도 민주화를 원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당연하죠’라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외국인에다 4남매의 엄마 입장에선 민주화로 바레인 사회가 혼란해지는 것보다는 전제군주 체제여도 안정적인 게 나아요. 왕실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베푸는데 굳이 민주화가 필요한가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1985년생으로 민주화가 자리 잡은 한국에서 자라온 나에겐 민주주의가 최선의 체제이자 당연한 것으로, 전제군주제나 독재는 타파해야 할 구체제로 인식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온 이들에겐 민주주의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사고 회로가 어쩌면 평생 민주주의 아래에서 살아온 사람의 오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도.

2010년 ‘아랍의 봄’ 발원지이자 유일한 성공 사례로 꼽히는 튀니지마저 지난 1월 총선 투표율이 10% 남짓으로, 독재 회귀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바레인의 민주화에는 왕족은 이슬람 수니파, 국민의 대다수는 시아파라 종교 갈등까지 얽혀 있다. 민주화는 도구일 뿐 실제 목적은 시아파의 권력 차지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중동의 분위기가 읽힌다.

5월에도 38도까지 올라가는 중동의 한복판에서, 스포츠를 취재하러 갔다가 아랍국가들의 민주화까지 고민하고 왔다. 민주화가 국민의 동의 없이는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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