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빼고 귀를 기울이면”...만원전철 승객 위로하는 ‘DJ’ 김정주 기관사

“오늘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힘내시기를 응원합니다. 좋은 날, 행복한 날 되시기를 바라며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15일 오전 출근길 서울 지하철 6호선 월곡역을 지나 고려대역으로 향하던 만원 열차 안. 승하차 안내 멘트가 아닌 인삿말이 흘러나와 스마트폰에 열중한 승객들의 정적을 깼다.
이 방송의 주인공은 6호선 신내승무사업소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김정주(48) 기관사다. 지난 2016년부터 하루 4번씩, 30~60초 정도 길이의 인사 멘트 방송을 이어오고 있다. 6호선 월곡역~고려대역, 망원역~마포구청역 구간에서 방송한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요.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생을 보람있게 산다는 건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 행복해야 하는 거니까요. 오늘도 웃음지으며 보내시는 하루 되시길 응원합니다.”
출퇴근길 승객들에게 소소한 감동을 주는 김 기관사의 방송은 입소문을 타고 점차 유명해졌다. 지난 7년간 고객 칭찬 민원이 483건이나 쌓였다.
김 기관사가 직접 작성한 글귀의 내용에 감동받았다는 승객이 특히 많다. ‘5월 24일 오전 7시 57분 신내행 열차를 이용한 승객입니다, 조용한 지하철에서 따뜻한 메세지가 울려 마음이 포근해졌답니다’ 등 승객들이 작성한 글이 지하철 문자 민원함이나 고객의소리함에 연이어 들어온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작년 5월 한 청년이 남긴 글은 그의 가슴에 깊게 남았다.
‘서울에 취업한 지 한 달 차인 광주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청년은 ‘회사 생활에 치이고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뿐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 때 차창 밖 초록빛 풀과 분홍빛 벚꽃을 보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신 기장님 목소리에 이어폰을 빼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지하철 직원 분이지만 그 한마디에 타지생활 하는 한 청년이 하루를 또 버텨갔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끝맺었다.
김 기관사는 “저도 매일 구로구 집에서 6호선 봉화산역까지 지하철로 편도 1시간씩 출퇴근하는 승객 중 한 명”이라며 “삭막한 만원 열차 안에서 갑갑하고 때론 서러운 마음을 왜 모르겠나, 그럴 때 지하철 방송에서 ‘사람 냄새’ 나는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기분까지 들더라”고 했다.
글귀의 내용은 에세이집, 잡지, 블로그 등에서 따온다고 한다. 매일같이 출근 또는 통학하며 반복적으로 방송을 듣는 승객이 많다보니 늘 똑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없어서다. “인터넷을 보다가도 좋은 글귀가 있으면 참고하려고 내용을 메모해둔다”고 한다.

사회 초년생 때 일반 기업에서도 일해본 적 있다는 그는 기관사가 천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려움은 있다. “때론 외로운 직업”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운전하지만 정작 조종석에 선 기관사는 혼자다. 하루에 총 6시간 정도를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한다. 그래서 김 기관사는 “승객분들께 따뜻함을 전해드리고 싶어 인사 방송을 시작했지만 사실 저 스스로도 큰 기쁨과 낙을 얻는다”고 했다.
김 기관사는 이런 방송 실력과 위기 대응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8일 서울교통공사 ‘2023 방송왕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3000여명 승무본부 직원 중 본선에 참가한 15명 중 1위다.
그는 “기관사로서 바라는 건 결국 오직 승객의 안전 뿐이다”라며 “설령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럴 때 제 방송이 승객들이 대피하고 안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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