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가장한 대통령과 몰염치 야당의 '정치 파괴史'

2023. 6. 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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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칼럼] '적대적 공존' 카르텔, 임계점 넘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현 단계 한국정치의 핵심적 위기는 정치의 양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 양극화는 정치의 교착을 가져오고, 이는 갈등 조정의 정치가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당은 대통령의 권력에 짓눌려 무기력한 양상으로 일관하고 있고, 야당의 비주류 역시 당 대표의 거취에 관한 확신 없이 공천권에 가위 눌린 양태를 보인다.

이러한 행태는 법치를 가장한 권력의 무절제한 행사, 다수결을 빙자한 의회주의의 실종을 가져왔다. 이의 저변에는 거대정당에 의한 기득권 카르텔 정치가 자리 잡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대화와 타협,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존의 정치를 진영에 편승한 정치가 대체했다. 진영정치의 일상화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야 적대의 고착화와 정치 불신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몇 가지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여소야대의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이 가져오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timacy)의 문제다. 야당이 의석수의 우세를 바탕으로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이에 대해 헌법상의 권한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식의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의 충돌이 정치 실종을 가져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자제와 관용, 포용은 찾아볼 수 없다.

둘째, '팬덤(강성 지지층)'에 편승하는 정치다. 특정 정파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을 팬덤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문파(문재인 지지 세력)' 등이 있었고 이들도 정치의 변수로 작용했지만, 2019년 '조국 사태' 때 불거지기 시작한 팬덤 정치는 양상 자체가 다르다. 팬덤 정치가 과대 포장된 면을 감안하더라도 대척 정치를 강화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셋째, 현대사의 측면에서 원인(遠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를 둘러 싼 찬탁과 반탁 논쟁이 왜곡 전개돼 당시 우익과 좌익이 분열되는 단초를 열었다. 즉 일제의 강점, 해방 공간의 좌우의 대립, 제주 4·3과 여순 사건 등에서 불거진 사상적 낙인찍기, 군사 쿠데타, 권위주의 정치, 민주화 이후의 지역주의와 이분법적 흑백 논리, 서구적 의미의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부재 등의 역사적 원인(原因) 등이다.

넷째, 근인(近因)도 무시할 수 없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3월까지 박근혜 탄핵 과정의 촛불혁명에서 야기된 이른바 '태극기 대 촛불'의 대립은 유권자를 포함한 거대한 진영을 형성시켰다. 헌법 절차와 국민주권주의에 의한 합법적 탄핵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양대 진영 논리가 정치의 상수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현상으로만 볼 때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역시 보수의 극단적 이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다섯째, 민주화 이후 10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된 공식이 깨지고 23만 표에 불과한 근소한 차이로 대선의 승패가 갈리면서 진영 대립이 격화됐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지난 정권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연상시키면서 진보진영의 반발을 불러오고, 보복의 정치의 프레임이 정착되는 양상이 대척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섯째, 여야의 수장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정치력 부재와 '사법리스크'다. 여야 정치인들은 이들의 권력 앞에서 자신의 공천과 사적 이익의 탐닉을 위해 일방적 진영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데 몰각되어 있다. 약간의 이견은 진영의 장벽에 의해 바로 진압되고 만다.

야당의 몰염치한 정치는 국회에서의 체포동의안의 연이은 부결로 이어졌다. 이제 정치의 한계는 임계점에 왔다. 정치를 빙자하여 사익을 탐닉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진영에 편승하는 부박(浮薄)한 정치, 인민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출세를 위해 존재하는 정치가 당연시되고, 유권자는 그들의 권력욕을 채우는 데 동원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 위기의 수많은 원인을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다. 우선 여야의 리더십이 변해야 하지만 강고한 진영 정치가 박제된 상황에서 기대할 수 없다. 유권자가 정치적 에너지를 발휘할 공간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역사에는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 위기의 고비마다 국민주권이 이를 감당해왔다. 아무로 모르는 '상상 이상의 일'이 올 수 있을까.

충무공 이순신의 많이 알려진 시(詩)이지만, 여기에 소개함으로써 공직자들의 모범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丈夫生世 用則效死以忠(장부생세 용즉효사이충)
不用則 耕野足矣(불용즉 경야족의)
若媚要人 竊浮榮 吾恥也(약미요인 절부영 오치야)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쓰이면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는데 만족하리라.
만약 힘 있는 자에게 아부하여 뜬 영화를 탐낸다면 스스로 부끄럽다.
(이충무공전서 1592년 5월 경)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ccr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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