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이솝 우화의 나그네'와 '북한'의 차이점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한 내기를 했습니다. 먼저, 바람이 강한 바람으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 했으나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꽁꽁 싸맸습니다. 이번에는 해가 나섰습니다. 해가 따뜻하게 햇볕을 비추니 나그네는 더위에 외투를 벗어버렸습니다. 바람보다 햇볕이 외투를 벗기는데 효과적이라는 이솝 우화의 한 대목으로, 대북정책에서 햇볕정책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햇볕의 의도를 몰랐던 나그네
이솝 우화의 나그네는 외투를 벗기려는 햇볕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햇볕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기에 날이 더워지니 별생각 없이 외투를 벗었던 것입니다.
북한도 중국·베트남식의 개혁 개방이 가능할까
북한도 중국·베트남식의 개혁 개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북한과의 교류 협력 강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려는 대북 포용 정책의 바탕에는 이러한 기대와 희망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베트남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권력 세습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언뜻 보면 사소해 보이는 듯하지만, 이 차이는 체제의 경직성과 관련해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권력은 화궈펑을 거쳐 덩샤오핑에게 넘어갔습니다. 마오쩌둥 당시 일부 우상화 움직임이 있었지만, 자녀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지도자가 교체되면서 중국에서 우상화의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의 경우에도 베트남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민족해방의 상징적 존재인 호찌민이 집단지도체제를 강조하며 개인숭배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우상화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김일성 우상화에 매진하면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김정은 역시 이른바 백두혈통, 즉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를 확고히 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길이기에 온 사회를 김일성 일가의 왕국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와의 본격적인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와의 본격적인 교류를 통해 외부정보가 자유롭게 들어올 경우 그동안 행해 온 우상화, 신격화 교육의 허구가 드러나게 되고, 이는 김일성 왕국의 사상적 기반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는 '신'인데, 북한 주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되면 신의 영역에 있는 김일성 일가의 위상이 흔들리게 됩니다.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습니다. 남한 영상물을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법입니다. 2023년 1월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도 제정했습니다. 남한 말투 등을 사용하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대 사형에 처하도록 하는 역시 어마어마한 법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외부정보와 문화 차단에 사활을 거는 것은 외부정보 유입이 김정은 체제 유지에 가장 위협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문제는 없었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햇볕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유를 북한 쪽에서 살펴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북한 쪽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햇볕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를 남한 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북한은 조금씩 조금씩 남한에서 들어오는 단맛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남한 정부에서 들어오는 식량 비료 지원과 민간 차원에서 행해지는 각종 지원, 금강산관광과 기타 남북 경협 등을 통해 들어오는 돈은 북한을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남북 간 접촉이 있을 때마다 북한 당국자들은 겉으로는 자존심을 내세웠지만, 남쪽 사람들에게 얼마씩 받아 챙기고 술 얻어먹고 선물 받아 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회담을 위해 남한을 오가면서 남한이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라는 인식도 북한으로 퍼져 갔습니다. 대북 지원이 일상화되다 보니 남한으로부터 지원받는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도 공공연한 사실이 됐고,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박힌 쌀 포대가 북한 장마당에서 그대로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상황까지 나아갔습니다.
자본주의의 전파는 부패의 전파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죠. 확실히 그랬습니다. 북한은 조금씩 햇볕정책의 마력에, 돈의 마력에 끌려들어 갔습니다. 북한 당국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외부에서 스며드는 온기가 너무 거세 북한이 입고 있던 외투의 단추가 풀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남한에서 진보와 보수 진영의 분열은 매우 심각했고, 진보-보수 간 정권교체는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대북정책은 포용 정책이든 압박 정책이든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집행돼야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정권교체 때마다 대북정책이 널뛰기를 하면서 북한은 외투를 다시 부여잡게 됐습니다. 정권 별로 번갈아 가며 햇볕과 바람을 활용하는 대북정책의 비일관성이 결과적으로 외투를 입고 있는 북한의 내성만 키웠을 뿐입니다.
결국 2016년 2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활성화됐던 남북관계가 16년 만에 제자리로 회귀한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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