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 도입하자 기적이…추락하던 출산율 반등한 나라

권오균 기자(592kwon@mk.co.kr) 2023. 6. 16. 06: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극복한 스웨덴 가보니
“오후 3시면 아이 돌보려 퇴근
가정 최우선해 회식 드물어”
아빠 육아휴직 90일 의무화
복지 늘리자 출산율 상승
8일(현지 시간)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아래 왼쪽 세번째)이 스웨덴을 방문해 마르틴 안드리아손 스웨덴 고용부 양성평등 차관(윗줄 왼쪽 두번째)을 만나 스웨덴의 가족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자료 = 여성가족부]
지난 9일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가는 오후 4시부터 도로에 자동차와 자전거가 쏟아져 나왔다. 스웨덴에 30년 넘게 거주한 교민 방혜선 씨는 “평일 오후 3시가 넘으면서 퇴근길 정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집으로 향한다. 방 씨는 “스웨덴은 유연근로제가 보편적이라 아이 있는 부모가 7시에 출근하면 오후 3시에, 8시에 출근하면 오후 4시면 퇴근한다. 부모 중 한명이 일찍 출근해 어린 자녀를 등교시키고 나머지 한명이 하교를 맡는 경우가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워킹맘(일하는 엄마)’과 ‘라떼파파(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는 스웨덴의 높은 합계출산율(2022년 기준 1.52)을 지탱하는 두 축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0년째 꼴찌다.

같은 날 스톡홀름에 있는 주스웨덴 한국 대사관에서 만난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는 “스웨덴은 성차별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로 진입했다”며 “저출산 해법 역시 가정 내 평등과 여성의 높은 사회진출에 있다”고 말하며 남성 육아휴직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웨덴에서는 일과 가정을 모두 책임지는 ‘슈퍼맘’도 주부가 전적으로 도맡는 ‘독박육아’도 없다는 의미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우선시 되다보니 일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는 일도 없다. 일례로 스웨덴에서 야근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 교수는 “야근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고 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동료들과 저녁 술자리가 거의 없는 것”이라며 “다들 ‘떙’치면 집에 가기 바쁘다”며 남녀를 불문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덧붙여 설명했다.

견고한 출산율을 유지하는 스웨덴도 한때 저출산 위기를 겪었다. 이를 극복하는 데 무엇보다 부부 육아 할당제가 큰 몫을 담당했다. 육아를 꺼리는 남성들의 저항도 있었으나, 어느 한쪽에 육아부담을 짊어지게 하지 않고 남자든 여자든 일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신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 출산율을 다시 끌어올 수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1974년 서구 사회 최초로 남성과 여성이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으나 시행 첫해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500여명에 불과했다. 니클라스 로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 대변인은 “당시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근육질의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에 ‘육아 휴직 중인 아빠’라는 문구를 담은 사진과 TV 광고를 제작하는 캠페인까지 벌였다”고 말했다.

남성 보육 참여를 늘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1995년 부모 각자에게 육아휴직 1개월씩을 할당하는 이른바 ‘엄마 할당제’와 ‘아빠 할당제’를 도입하고, 그 할당 기간을 2002년에는 60일로, 2016년에는 90일로 늘렸다. 현재 총 480일 육아휴직 기간 중 부부가 각자 240일씩 사용하되 150일은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있게 돼 있다. 양도 불가능한 90일은 안 쓰면 없어진다. 아빠에게도 약 3개월간 육아휴직이 강제된 셈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정이 늘자 스웨덴 정부는 바바(vabba·스웨덴어 아이barn와 돌보다varda의 합성어) 제도를 도입해 아이가 아프면 누구나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했다. 직장인 누구나 바바를 이용해 결근하거나 퇴근할 수 있다. 보육 기간에서 아픈 아이를 데리러 가라고 요청하면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회사에서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 12세까지 연 최대 120일 사용할 수 있으며, 정부는 월급의 80%를 지급한다.

부부 육아할당제, 바바제도 등 공동 육아시스템 도입은 스웨덴의 출산율 증가로도 이어졌다. 아빠 할당제를 처음 도입한 1995년 1.73명을 기록한 후 1998년과 1999년에 1.5명까지 하락했지만 2000년부터 상승 추세를 보이며 2016년 기준 1.85명까지 올라왔다.

그렇지만 육아 휴직을 남성이 여성보다는 적게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마르틴 안드리아손 스웨덴 고용부 양성평등 차관은 “아직도 남성 육아휴직 사용율은 30% 정도로 저조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에게 아빠의 보살핌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도 남성 육아휴직의 근거로 작용한다”며 “아빠들이 육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니 법적으로 이를 강화하도록 계속해서 토론하고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과 일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스웨덴은 아낌없이 예산을 사용한다. 로프그렌 대변인은 “스웨덴은 매년 국가 재정의 25%에 해당하는 2600억크로나(약 31조 570억원)를 복지정책에 투입한다”며 “이는 남녀 모두의 일·가정 양립을 돕고 부를 재분배하는 데 쓰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복지정책이란 하나의 시스템으로 높은 고용률, 낮은 성별임금격차, 출산율 제고를 동시에 추구한다”며 “성평등을 추구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이 출산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22년 발표한 성격차 지수 순위 5위를 달성한 스웨덴에게도 과제는 남아있다. 마르틴 안드리아손 스웨덴 고용부 양성평등 차관은 “고용주가 여성을 꺼리는 일 역시 없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웨덴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격차를 없애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로프그렌 대변인은 “여전히 남녀 성별임금격차가 있고 남녀 건강격차도 있다. 여성은 3분의 1이 비정규직, 남성은 10%만이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불평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8일(현지 시간) 김현숙 장관(왼쪽)이 스웨덴을 방문해 마르틴 안드리아손 스웨덴 고용부 양성평등 차관과 가족정책에 대해 논의한 뒤 선물을 전달했다. [자료 = 여성가족부]
스웨덴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뭘까.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질문에 안드리아손 차관은 두 가지를 조언했다. 그는 “첫 번째,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두 번째, 여성 혹은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남녀 모두를 고려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