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에 노출된 양식장 노동자들
넙치(광어)와 장어, 횟감과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은 수산물입니다. 대부분 양식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양식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발암물질 노출 위험에 놓여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기생충 제거에 효과적".....수산용 구제제 '포르말린'
전남 영광의 한 장어 양식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통에 담긴 '수산용 포르말린'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산용 포르말린'은 물에 포름알데히드 37%를 섞은 것으로, 해양수산부가 지난 2006년 수산용 구제제, 즉 기생충 등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원료인 포름알데히드는 '1급 발암물질'입니다. 이때문에 도입 당시에도 수산물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지만 물과 희석해 소량을 사용하고, 출하 기간을 지키면 어류에 포르말린이 잔류하지 않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무엇보다 기생충 등 구제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양식장 관계자들도 "수산용 포르말린은 필수"라고 말합니다. 특히 치어(어린 물고기)를 입식할때는 '수산용 포르말린'을 안 쓰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 '백혈병' 초래한 수산용 포르말린.....노동자가 위험하다
문제는 수산용 포르말린을 수조에 뿌리는 과정에 수용액이 기화하면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나온다는 겁니다. 양식장 어류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공기를 흡입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포르말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 물질'에서 빠져있지만, '포름알데히드'는 고용노동부 특별관리 대상 물질로 작업환경측정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양식장에서 유해물질 조사는 잘 이뤄지고 있을까.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측정 실시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전체 조사대상 사업장 수는 2019년 75,001곳, 2020년 75,468곳, 2021년 75,377곳입니다. 이 가운데 어업 관련 사업장은 2019년 3곳, 2020년 3곳, 2021년 10곳에 불과합니다. 전체 1%도 되지 않습니다. 조사는 대부분 제조업이나 건설업에 치중돼 있었습니다. 그나마 조사를 한 어업 사업장도 측정요소가 소음과 분진, 산 및 알칼리류로 포름알데히드는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양식장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사이 양식장에서 일했던 외국인 노동자가 백혈병을 얻어 산재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식장은 상시근로자 5인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이어서 필요할 때만 중개업자를 통해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누가, 얼마나 양식장에서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남에만 양식장 만 6천여 곳이 있고, 여기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8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연관기사]
양식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판정…이주노동자 ‘칸’ 산재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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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하면 발암물질인데…실태 조사는 없어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89613
■수산용 포르말린 얼마나 사용됐나?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수산용 포르말린 사용 기준을 살펴봤습니다. 사용 어종은 넙치와 어란(무지개 송어 및 연어)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어종은 수산질병관리사 등의 처방을 받아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사용 후에는 처리용수의 20배 이상을 희석해 배출하도록 하고,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도 수산용 포르말린을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경남의 양식장들을 돌며 일을 했다는 한 노동자는 "가두리 양식장에서도 기생충과 물곰팡이 제거 효과가 좋아 그물 갈이를 한 달에 한 번 할 것을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 해도 된다며 약(수산용 포르말린)을 뿌린다" 고 증언했습니다. 또 "약을 뿌릴 때마다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에 고통스러웠지만, 보호 장구는 일반 마스크 한 장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수산용 포르말린'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걸까. KBS가 지난 5년 동안 수산용 포르말린 판매량을 확인해봤습니다. 2018년 1,435톤, 2019년 1,472톤, 2020년 1,359톤, 2021년 1,435톤, 2022년 1,201톤으로 해마다 천 톤이 넘었습니다. (자료:한국동물약품협회)
수산용 포르말린의 투여량(ml/ 물 1톤)은 넙치는 100~200 ml, 어란은 1000~2000 ml 입니다. 판매량과 비교해 봤을 때 양식장에서 광범위하게, 수시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관기사] 1년 판매량 천 톤 이상…‘수산용 포르말린’ 광범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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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알고 있었다.... 산재 승인 이후에야 대책 나와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고용노동부는 모르고 있었을까요. 외국인 노동자가 백혈병이 발병했다며 산재 신청을 한 것은 2021년 7월. 이후 고용노동부는 <수산물 양식어업 종사자의 유해요인 노출실태 조사를 통한 작업 개선 방안>이라는 연구과제 공모를 통해 양식장 표본 조사를 했습니다. 전국 내수면 양식장 10곳과 가두리 양식장 1곳이 대상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지난해 11월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제출됐습니다.
연구진은 양식장에 치어를 입식하거나 수조 청소를 할 때 '수산용 포르말린'을 살포한 경우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1일 8시간 평균치를 기준으로 11곳 모두 제한 기준인 0.3ppm 미만으로 측정됐습니다. 하지만 포르말린을 뿌리고 난 직후의 '단시간 노출'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이 양식장 2곳에 대해서 따로 단시간 노출을 조사해봤는데 1곳에서 포름알데히드 수치가 측정기 최대 측정값인 1.0ppm을 넘어서는 등 50분 평균치가 기준치인 0.3ppm을 초과했습니다. 실제로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도 '단시간에 고농도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위험성이 높은 작업 환경인데도 조사대상 양식장 종사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종사자 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종류나 위험성을 모른다"는 응답이 69%에 달했습니다. 작업할 때 착용하는 보호구도 일반 마스크가 79%였고, 착용하지 않는다는 답도 22%나 됐습니다.
연구를 한 김기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수산용 포르말린은 단시간 노출되므로, 노출 농도 관리 시 시간가중평균(TWA· 1일 8시간 작업기준) 대신 단시간 노출 기준(STEL·15분간의 시간 가중평균 노출값)에 준하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일반 마스크가 아닌 유기화합물용 마스크 및 화학물질용 안전장갑 등 적합한 보호구 착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연관기사] “양식장 포르말린 위험 보고 있었다”…대책 ‘미적’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5987
지난 4월 28일, 근로복지공단은 1년 9개월만에 양식장에서 일한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했습니다. 이후에도 고용노동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해당 사안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
우선 양식자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달 안에 기존의 '수산물 양식어업 종사자의 안전보건가이드'에 수산용 포르말린에 대한 부분을 보강해 전국 노동관서와 양식업 종사자들에게 배포하고 교육 자료 등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또 지난 9일에는 카카오톡 중대 재해 동향 알림방인 '중대재해 사이렌'을 통해 포름알데히드 노출위험 경보를 하고, 수산용 구제제로 포르말린을 취급하는 양식어업 현장에서는 예방 조치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실태 조사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고, 개인 보호구 지급 등도 사업자의 몫입니다 .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과 비교하면 어업은 사업장 수도, 규모도 적습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조사와 대책이 마련돼 양식장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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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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