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올초부터 “공교육 밖에서 수능 출제 말라”…이행 안한 교육부 大入국장 경질
윤석열 대통령은 올 들어 일찌감치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과정 밖에서 수능 문제를 출제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장관은 지난 1일 치러진 6월 수능 모의고사부터 쉽게 출제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수험생들은 6월과 9월 두 차례 모의고사를 통해 그해 수능 난도를 가늠한다. ‘올해는 쉬울 것’이란 메시지를 미리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6월 모의고사는 계획했던 만큼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장관은 16일 자로 교육부의 대입 담당 이모 국장을 경질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위원들에게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자세)를 취하면 (관료를) 과감히 인사 조치하라”고 했었다. 이번 대입 국장 경질도 이런 기조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대입 국장이 수능 모의고사 난도와 관련해 문책당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 14일엔 교육부에서 ‘해외 유학생 유치’를 담당했던 국장급도 경질됐다. 다른 부처로 발령 났는데 현 정부가 해외 유학생 확대 정책으로 추진 중인 ‘스터디 코리아 3.0′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 ‘탈원전 폐기 드라이브’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사실상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일부 공직자가 현 정부 기조에 엇박자를 내면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6월 모의고사’를 출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들여다볼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원은 수능과 모의고사 등 국가 시험 출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장을 맡았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작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 후보로 출마했고, 현재 이규민 원장도 문 정부가 임명했다. 교육부 주변에선 “평가원이 현 정부 교육 개혁과 적극 호흡을 맞출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계에선 수능이 어려울수록 학원 등 사교육 업계만 웃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능이 어려워 시험을 못 본 학생이 많으면 재수생이 늘고 입시학원도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지난 정부 당시 숙명여고 ‘쌍둥이 입시 부정’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문 정부는 입시 공정성을 강화한다며 수능 점수로 뽑는 정시 비율을 확대했다. 입시에서 수능 영향력이 커졌고 ‘킬러 문제(초고난도 문항)’도 등장했다. 교육계에선 “정시 확대로 재수생이 늘면서 학생 수가 줄었던 (재수) 학원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나왔다. 학원이 집중된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 의대 합격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의대 29곳의 정시 합격 신입생 중 강남 3구 출신 비율은 22.7%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9년 20.8%, 2020년 21.7%, 2021년 22.3% 등 매년 증가세다.
여권 관계자는 “수능이 계속 어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은 사교육 업자들과 결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시민 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을 대비하려면 진도를 찬찬히 나가는 학교보다 ‘킬러 문항’을 수없이 풀어보게 하는 학원이 훨씬 유리하다”면서 “학원에 가야 입시 준비를 할 수 있는 구조를 깨야 사교육비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수능을 150여 일 앞두고 쉬운 문제 출제를 강조하면서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수능을 어렵게 출제해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사전 정보가 없던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면서 “6월 모의고사는 끝났고, 9월 모의고사로 올해 수능이 어느 정도 쉽게 출제될지 알아봐야 하는데 아직은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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