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치통과 졸음
환자분, 졸지 마세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건 치과의사였고. 그 환자는 바로 나였다. 점심 후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데 수마가 들이닥친 것이다. 아무리 마취를 해도 그렇지 드릴로 잇몸을 뚫고, 피가 나고, 그야말로 입안은 난장판일 텐데, 잠이 올까. 하지만 나는 깜빡 졸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수술 도중 태연하게 잤다.
누가 더 힘이 셀까. 치통과 졸음. 진료할 때 자는 사람이 더러 있나요? 멋쩍은 물음에 웃으며 말했다. 많이들 주무셔요. 그러더니 고급한 정보를 추가했다. 실은 입 벌리고 자는 분들이 치료 중에도 더 잘 주무시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느라고 바빠서 본인의 잠버릇을 잘 모르지만 잘 때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잔다. 그 몽중에도 어디를 다녀오는지 입술을 씰룩거리도 한다. 너무 열심히 자기 때문에 그건 알 수 없는 영역의 일.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작 궁금한 건 이것이다. 왜 잘 때 대부분 입이 벌어질까?
미궁이라고도 하고 미로라고도 한다. 이 길에는 이리저리 구부러진 여러 갈래의 샛길이 많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미노타우로스라고 하는 괴물을 낳았다. 왕은 신의 계시에 따라 미노타우로스를 안에다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통로를 온통 복잡하게 만들어 들어가면 출구를 알 수 없는 미궁을 만들게 하였다. 한 자리에서 잠들고 깨기를 되풀이하듯, 한번 들어가면 도돌이표처럼 길을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퇴치를 위하여 자진해서 들어갔다. 그는 입구에 실을 묶고 그 실을 풀면서 걸어가, 맨 안쪽에 있던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하는 그리스의 신화.
우리는 죽은 듯이 잔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거닌다는 누구들처럼 어쩌면 생사의 담벼락을 매일 서성이는 것. 푹 자고 나면 이리도 개운한 건 코끝으로 죽음의 궁둥이를 만졌기 때문일까. 그래서 자는 동안 깨어 있는 바깥으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여기에 아직 살아 있다고.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고. 드르렁드르렁. 잠의 미궁에 빠진 이의 뻥 뚫린 입에서 나오는 코 고는 소리는 테세우스의 손에 달린 실 같은 것. 생사의 미로에 드리워진 구원의 밧줄처럼 입구를 이승 쪽으로 열어놓은 것.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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