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한 연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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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대문 앞 개울물 불어났을 땐, 낭군의 배 여러 번 몰래 찾아왔었지요.
배가 작아 붉은 장막은 펼칠 수 없고요.
낭군 또한 꽃 아래 물결이 되어, 아무런 장애 없이, 바람 따라 비 따라 오래오래 서로 오갈 수 있었으면.
배가 작아 장막을 설치할 수도 없으니 둘만의 공간이 사라진 지금, 여자는 속수무책 슬퍼하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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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작아 붉은 장막은 펼칠 수 없고요.
어쩔 도리 없이, 짝을 이룬 연꽃 그림자 아래서 하염없이 슬퍼하고만 있답니다.
원컨대 소첩이 붉은 연꽃이 되어, 해마다 가을 강 위에 돋아났으면.
낭군 또한 꽃 아래 물결이 되어, 아무런 장애 없이, 바람 따라 비 따라 오래오래 서로 오갈 수 있었으면.
(近日門前溪水漲. 郞船幾度偸相訪. 船小難開紅斗帳, 無計向, 合歡影裏空惆悵.
願妾身爲紅菡萏. 年年生在秋江上. 重願郞爲花底浪, 無隔障, 隨風逐雨長來往.)
―‘어가오(漁家傲)’·구양수(歐陽脩·1007∼1072)
개울물이 불어났을 때 남자는 배를 저어 여자의 집을 들락댔지만 물이 빠지면서 뱃길이 막히자 둘은 밀회가 어려워졌다. 배가 작아 장막을 설치할 수도 없으니 둘만의 공간이 사라진 지금, 여자는 속수무책 슬퍼하고만 있다. 이 애타는 연모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소첩은 연꽃이 되고 낭군은 꽃 아래 물결이 되어 오래도록 서로 오갈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제법 외설스럽기까지 한 이 노래는 시인의 창의적 발상이라기보다는 민가를 모방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추호의 숨김도 망설임도 없는 여인의 농염한 연가(戀歌)가 예교와 도를 강조했던 유학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건 아무래도 서먹스럽다. 바로 여기에 시와 구별되는 사(詞)만의 특징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 가사는 사랑, 이별, 연모 따위를 담아내는 게 제격. 시가 문재(文才)를 가늠하는 정통문학이라면 사는 오락과 유흥의 수요에 부응하는 통속문학으로 치부했다. 과거시험에서 사가 제외된 이유일 것이다. 구양수, 소동파 등은 이런 점에서 아속(雅俗)을 넘나드는 대문호라 할 만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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