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해안 ‘난민선박 침몰 참사’ 책임 공방

박은하 기자 2023. 6. 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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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 브로커 탓” vs “반이주 정책 탓”
생존자 모두 남성…“실종자 수백명 중 다수가 여성·어린이”
전복 전에 찍힌 ‘콩나물시루’ 갑판…사망자 수 더 늘어날 듯 이주민을 가득 태운 선박이 14일(현지시간) 그리스 남서부 해안 75㎞ 지점에서 강풍에 휩쓸려 전복되기 전 거친 지중해를 헤치며 항해하고 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이날 전복 사고로 최소 78명이 사망하고 104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벌어진 이주민 선박 참사를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일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15일(현지시간) 사흘간의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하며 ‘이주 브로커’ 조직을 비난했지만, 지중해 지역에서 거듭되는 참사는 유럽의 강도 높은 반이주 정책의 결과라는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이날 필로스만 인근 공해상에서 전날 발생한 선박 침몰사고의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재개했다. 해안경비대는 전날 오후까지 104명의 승객을 구조했으며 78구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출신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침몰 선박의 항공사진을 보면 길이 25~30m로 추정되는 이 배의 갑판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다. 니코스 알렉시우 해안경비대 대변인은 “선박의 내부도 사람으로 꽉 찼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명조끼를 착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IOM)는 승선 인원을 400명으로 추정하며 “더 많은 사망자 수를 보게 될까 두렵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750명가량이 배에 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빈센트 코체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중부 지중해 지역 특사는 “(이주민을 태우고 지중해를 건너는) 어선에는 보통 500~600명이 타고 있으며, 대부분 화물칸에도 숨어 있다”고 르몽드에 말했다.

특히 구조당국은 생존자가 모두 남성인 것에 비춰볼 때 여성·어린이 상당수가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배에 아이들이 100명가량 타고 있는 걸 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장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소식을 듣고 깊은 실의에 빠졌으며 희생자와 비극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바쳤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사고를 두고 책임공방이 일고 있다. 유럽 국경·해안경비청(Frontex·프론텍스)과 그리스 당국은 사고 하루 전인 13일 오후 선박을 발견했다. 프론텍스는 성명을 내고 “선박에 여러 차례 구조해주겠다는 의사를 보냈고, 당일 오후 선박에 접근해 물과 식량을 전달했다”며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의 도움을 거절하고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고만 말했다”고 밝혔다. 당국자들은 이주 브로커들이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이주민에게 당국의 도움을 거절하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를 중개하는 밀항 브로커를 비난했다. 이오아니스 사르마스 그리스 총리는 “인간의 불행을 착취하는 무자비한 브로커들의 희생자들을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코체텔 UNHCR 특사는 위험에 처한 이주민들이 도움을 거부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비극의 발생을 멈추게 하려면 중부 지중해 지역에서 국가주도의 강력하고 예측가능한 수색 및 구조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도 유럽연합(EU)이 2019년 지중해에 해군 배치를 중단한 이후 이주민 익사 사고가 급격히 늘었다며 “프론텍스가 좀 더 일찍 개입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참사는 오는 25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애도기간 선포로 공식 선거운동 일정은 중단된 가운데 야당은 우파 정부가 강도 높은 반이민 정책으로 “지중해를 공동묘지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4월 아프리카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온 난민 가족을 고무보트에 태워 바다 한복판으로 밀어낸 사실이 지난달 뉴욕타임스 보도로 알려지면서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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