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피부색 검은 심청과 춘향은 언제?

전지현 기자(code@mk.co.kr) 2023. 6.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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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인어공주와 여왕은
미국 사회 변화의 단면
이민자 급증한 韓문화계도
다양한 인종과 공존해야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 상영관에는 어린이도 어른도 거의 없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빨간 머리 백인 대신 나타난 레게머리 흑인 인어공주는 낯설었다. 어리둥절한 아이들은 어두컴컴한 난파선에서 상어가 공격하는 공포영화급 장면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인어공주의 친구인 물고기 플라운더의 눈이 실제 생선 눈과 똑같아 무섭다는 반응도 나왔다. 원작을 훼손하고 어린이의 동심뿐만 아니라 어른의 추억도 파괴한다는 혹평을 듣고 극장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냉대를 받는 이 영화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선 달라진 흑인의 위상이다. 에릭 왕자의 양어머니 셀리나 여왕 역을 맡은 흑인 배우 노마 두메즈웨니 모습이 신선했다. 그동안 흑인 왕비가 등장한 할리우드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영화가 실제 역사를 반영하기에 어쩔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동화 소재 영화에서라도 흑인이 왕족이나 귀족, 상류층으로 자주 나온다면 어린이들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흑인 아이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인어공주 역할을 맡은 핼리 베일리는 "어렸을 때 흑인 에리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그것을 봤다면 내 인생관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틀란티카 바다의 왕이자 백인 트라이튼의 딸들인 7대양 인어가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까지 다채로운 피부색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생물학적으로는 납득이 안 가지만 영화는 다양한 인종의 공존을 역설한다.

이런 영화가 100년 전부터 꾸준히 나왔더라면 오늘날 인종의 충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상상을 해본다. 만시지탄이지만 미국 사회는 인종주의 참사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달라지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2020년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이다. 사고 영상이 공개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 이후 미국 사회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환골탈태 중이다. 그 선봉에 문화예술계가 섰다. 먼저 백인들의 축제였던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상)과 골든글로브가 흑인과 아시아인, 히스패닉 영화인들에게 상을 나눴다.

대중문화에 이어 백인의 전유물이던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흑인을 무대 주인공으로 올리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지난 4월 세계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흑인 복서 에밀 그리피스의 삶을 그린 오페라 '챔피언'을 공연했다. 흑인 베이스 바리톤 라이언 스피도 그린이 그리피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흑인이 주인공인 오페라 '오텔로'마저도 플라시도 도밍고 등 백인 테너가 얼굴을 검게 만들고 등장하던 때를 생각하면 격변인 셈이다.

할리우드는 아시아인도 포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헨리 골딩은 로맨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데 이어 '007' 시리즈 차기 제임스 본드로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변화를 보면서 한국도 언젠가 마주할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 시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저변을 채워 나가고 있다. 식당과 공장, 농어촌은 이들의 일손 없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국내 문화 수요층에서 이민자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다면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2022년 한국 거주 외국인 국적 순위)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나올지도 모른다. 피부색 검은 춘향이나 심청을 봐도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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