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통조림에 숨겨진 비용…아프리카 참치잡이배 선원들이 파업한 까닭은

김서영 기자 2023. 6. 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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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가나에서 잡힌 참치.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참치 김치찌개, 참치 샌드위치, 참치 샐러드…. 비교적 싸고 맛있는 참치캔 하나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은 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참치 통조림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다. 서아프리카의 참치잡이 선원들이 전례없는 대규모 파업에 나선 이유다.

지난주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의 참치잡이배 64척에서 선원 약 2000명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기니만과 인도양에서 조업하는 프랑스·스페인 선박 약 80%가 동참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파업이었다.

세계자연기금(WWF) 자료를 보면,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 등 서아프리카 국가 인구의 약 10분의 1이 어업에 종사하며 수산물 수출 1위는 참치다. 이 일대에서 잡히는 열대 참치는 매년 약 422억달러(약 54조원)어치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의 참치 산업이 이 지역의 풍부한 열대 참치 조업량과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독차지하는 구조가 이번 파업의 원인이 됐다고 14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전했다.

국제운송노동자연맹(ITF)에 따르면,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선박에 고용된 선원들은 한달에 174파운드(약 28만원) 내지는 주당 42파운드(약 7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월 최저임금인 522파운드(약 84만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아프리카 국가들과 체결한 ‘지속가능한 어업 파트너십 협정(SFPA)’에도 위배된다. SFPA는 EU 회원국의 어업이 제3국의 지속가능성을 준수하고 사회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참치잡이 현장에선 이러한 협정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선원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더해 선원들은 유럽의 참치 업체가 어획량에 따른 보너스를 적게 지급할 목적으로 어획량을 실제보다 적게 보고하고 있으며, 이를 감시·방지할 참관인이 선박에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유럽 업체들만 이익을 올리게 되는 구조라는 취지다.

요로 케인 세네갈 어업노조 사무총장은 “왜 우리가 SFPA에서 이미 분명히 약속된 것을 얻기 위해 이러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지에 대해 EU 집행위와 현지 당국이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대형참치냉동선생산자연합(OPAGAC)은 선원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OPAGAC 측은 “EU의 참치잡이배는 국내 및 국제 법규를 엄격히 준수하며 모든 선원은 ILO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참치 산업은 인신매매, 구타, 비인간적 노동 조건 등으로 ‘현대판 노예산업’이란 오랜 비판을 받아 왔다. 남획으로 인해 전 세계 어류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수익성을 높이려는 대형 수산물 업체들은 이 같은 현실에 눈 감아 왔다.

지난 5월 해양보호 비영리단체인 블룸과 미 하버드 로스쿨의 ​​국제 인권 클리닉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 ‘캔에 담긴 잔혹성’(Canned Brutality)에 따르면, 한 참치 어선 선원은 악천후 속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일해야 했고, 물고기를 죽이는데 사용되는 도구로 선장에게 구타당하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2017년 그린피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에서도 한 대만의 참치어선 선원은 휴식도 없이 매일 17시간씩 일해야 했고, 부상을 당했을 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사해왔던 탐사 저널리스트 알폰소 다니엘스는 “대형 수산물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영업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있다. EU 차원에서 이 기업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룸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참치 제품이 노동자와 환경에 대한 남용으로 생산된 것인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서아프리카 참치 어선 파업은 4일간 이어진 끝에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 당국의 중개를 거쳐 중단됐다. 선원들에게 390파운드(약 63만원)에 상응하는 월급과 보너스를 중간 지급하겠다는 제안이 오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노조는 체포된 일부 선원들의 석방 또한 촉구했다.

양측은 향후 3주 이내로 ILO 기준에 따른 최저임금 지급 논의를 전개하기로 했다. 쟈니 핸슨 IFT 어업 담당 국장은 “다른 기존 협정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선원들은 ILO 최저임금이나 ITF 통합 최저임금(1156달러) 또는 각국의 최저임금 중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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