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정치 논리 배제해야 군이 바로 선다

박희준 2023. 6. 1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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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속 초급간부 구인난
육사 이탈 늘어 81기 230명뿐
군은 단 한 번 전쟁 위한 존재
군 사기 떨어뜨리는 건 자해극

요즘 군부대 중대장들이 저녁에 긴장 모드라고 한다. 언제 휴대폰이 울릴지 몰라서다. 상급자나 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아니다. 병사들 부모한테서 오는 전화라고 한다. “지금 취사장 뒤편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확인해 봐라.” 2020년 7월부터 전면 허용된 휴대전화기 사용이 바꿔 놓은 군부대 풍경을 다소 과장해서 하는 얘기일 것이다.

휴대전화가 구타나 가혹행위 예방의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좋지 않은 소식은 바로 군밖으로 알려져 사회 문제로 떠오른다. 병사들의 식단을 바꾸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어설프게 조리한 음식은 그대로 사진으로 찍혀 인터넷 뉴스의 소재가 되고 곧 포털사이트의 랭킹뉴스 목록에 오른다. 병사들의 심리적 단절감 해소라는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박희준 논설위원
그렇더라도 휴대전화 사용의 어두운 면에 눈감을 수는 없다. 사이버 도박이나 유해사이트 접속, 마약 구매 같은 폐해는 그나마 보완책을 통해 어느 정도 억지한다고 치자. 문제는 휴대전화를 통해 사회의 생활 및 사고 방식이 군으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사회와 단절감 해소’를 한꺼풀 벗겨보면 ‘사회와 동조화’다. 게다가 지휘관의 말과 행동, 부대 상황이 거의 실시간 외부로 전파된다면 큰 일이다. 이런 토양에서 소신은 열성 인자로, 눈치는 우성 인자로 진화할 뿐이다. 군복을 입히는 건 사회인이 아니라 군인임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는 걸 유념해야 할 때다.

휴대전화는 하나의 징표일 뿐이다. 사회와 동조화 속에서 군이 흔들리면서 초급 간부들이 지휘에 애를 먹고 있다. 부대를 ‘최상의 경계 상태’가 아니라 ‘최상의 안정 상태’로 유지하는 게 목표가 된다. 지휘관들은 일과 후에도 부대에서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노심초사한다. 얼차려를 주거나 호통을 치는 건 고사하고 병사를 ‘용사’라고 호칭하며 대우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MZ세대의 큰 흐름이지만 실상은 초급간부들도 MZ세대다.

정치권은 30만여명의 표를 겨냥해 기회만 되면 복무기간을 줄이고 병사 월급 올리는 데 앞장서 왔다. 육군 복무기간은 1993년 30개월에서 26개월로, 이후 다시 24개월, 21개월, 18개월로 단축됐다. 급여는 병장 기준으로 1993년 1만1300원에서 올해 100만원으로 올랐고 후년 200만원에 도달할 예정이다. 다음달부터는 병사들이 일과 중에도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

반면에 초급 장교들 처우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열악해졌다. 숙소가 없어 컨테이너에서 지내면서 급여는 병장들이 받을 200만원보다 그리 많지 않다.

장교라면 누구나 꿈을 꾸는 별도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정권이 바뀌면 장군들이 계엄검토 문건으로 처벌받고 전 정권 인사 척결로 국방장관까지 구속된다. 성군기 의혹 제기만으로도 지휘관 문책과 처벌이 이뤄지고 정작 당사자의 부정행위는 아예 거론조차 못하는 분위기다.

이러니 누가 국가에 몸바치는 일에 뛰어들려 하겠는가. 초급간부 인력난이 심각하다. 국내 첫 학군단인 서울대 101학군단(ROTC)에서 올해 초 배출한 60기생은 9명이다. 1963년 1기생 528명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중도 이탈자가 늘어 현재 81기 3년생은 정원보다 60여명 적은 260명 정도가 남아 있다. 전국의 의대생 중에는 월 200만원을 받는 37개월 군의관 생활을 포기하고 18개월 일반 복무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MZ세대를 위한 병영문화 개선 필요성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쥐여주고 복무기간을 줄이면서 급여를 올려준다고 좋은 군대를 만들 순 없다. 젊은이들이 군에 가면 인생의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 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학이나 사회기관과 연계해 전문지식을 쌓게 하는 식의 창의적인 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정치 논리가 군을 흔들어 놓아서도 안 된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언제든지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이들이다. 항상 군기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정치적 판단으로 군의 사기나 떨어뜨리고 있다면 자해극이나 다름없다. 군대는 단 한 번의 전쟁을 위해 고비용을 치르면서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땀흘리는 모든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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