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병해충 덮쳐…억장 무너지는 과수농가

김현수·이삭·최승현·김창효 기자 2023. 6. 1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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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앞둔 사과 깨지고, 고추·오이·배추 등 농작물 피해
이상고온·냉해 악재 연이어…“농사 50년, 이런 일 처음”

“냉해 피해본 지 며칠 지났다고 이카는지…. (지구가) 망할라꼬 카는가.”

경북 영주시 봉현면에서 9900㎡(약 3000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박대열씨(68)는 속이 타들어간다. 며칠 전 폭우처럼 내린 우박에 애지중지 돌봐온 과수원이 초토화돼서다. 사과뿐만 아니라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모두 떨어지거나 상처를 입어 생육환경까지 나빠졌다. 그는 “냉해 피해가 컸는데 병해충이 돌더니 우박 폭탄까지 떨어졌다”며 “여기서 50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말했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과수 농가가 시름에 빠졌다. 봄철 ‘반짝’ 더위로 꽃이 지나치게 일찍 피고 지며 과일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상황에서 저온 피해와 우박, 병해충까지 돌고 있어서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11일 내린 우박으로 경북·충북·강원·전북 등 지역에서 과수와 고추, 옥수수 등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이날 오전 8시 기준 2120.4㏊로, 과수 피해(1231.4㏊)가 절반을 넘었다.

충북지역의 피해 면적이 835.7㏊로 가장 컸고 경북(758.2㏊)과 강원(415.8㏊), 전북(95.7㏊) 순이다. 현재 지자체에서 피해 현황을 추가로 파악 중인 만큼 피해 면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짧은 시간동안 강하게 내린 우박으로 수확을 한 달여 앞둔 사과 농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과 농가의 피해 규모는 759.1㏊로 전체의 35.1%다.

충북 영동군 양강면 양정리 박희열 이장(67)은 지난 11일 내린 우박으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고 전했다. 그가 40년 넘게 가꿔온 과수원 1만9000㎡도 엉망이 됐다. 박 이장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와 우박이 25분 정도 쏟아졌다”며 “짧은 시간에 냇물이 불어났다.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는 18개 시군 가운데 12개 시군에 피해가 접수됐다. 특히 옥수수와 고추·오이·배추 등의 작물이 큰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 무주군에서도 사과와 고추·블루베리 등 27㏊의 과수 피해가 났다. 한상임 진안군 노채마을 이장은 “조금만 있으면 빨간 고추가 되는데 우박으로 완전히 농사를 망쳤다”고 망연자실했다.

농가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들어 연이어 악재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월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는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한 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면서 농작물 냉해 피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파악한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이어진 이상저온과 서리로 냉해를 입은 면적은 총 9628㏊다. 경북의 피해 규모가 3517㏊ 정도로 가장 넓고, 전남(1768㏊)·전북(1504㏊) 등으로 조사됐다.

이상기후로 제대로 영글지 못해 농작물 체질이 약해지자 병해충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북 청도·경산 등 복숭아 농가에서는 세균구멍병(천공병)과 탄저병이 번지고 있다. 청도에서 과수원을 하는 김달원씨(58)는 “과수원의 50~70%는 천공병 피해를 봤다”며 “3월에는 고온, 4월에는 영하의 저온, 5월에는 잦은 비까지 내리면서 병균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현수·이삭·최승현·김창효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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