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과실로 숨진 아들의 유공자 인정 번번이 거부…‘보훈’은 상처만 줬다”[보훈의달 기획 - 죽음의 무게를 달다]

이홍근·강은 기자 2023. 6. 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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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순직 3형’ 유가족의 울분
2016년 사망 홍정기 일병…국방부·보훈처 재심 거부
다른 기관들은 서로 ‘우리 책임 아니다’ 떠넘기기만
“국가가 ‘그 정도로 중요한 죽음 아니다’ 말하는 꼴
아들 명예 입증을 나라가 아닌 유가족이 해야 하나”
봐도 봐도 그리운 아들 군 복무 중 뇌출혈로 숨진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국가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일.”

보훈의 사전적 의미다. 그 죽음은 숭고한 죽음이었노라고 유족을 위로하는 데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2016년 군에서 아들을 잃은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에게 대한민국의 보훈은 위로가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아들의 죽음에 합당한 예우를 다해달라는 요구를 할 때마다 국방부,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 등 국가기관은 “그 정도 예우를 받을 죽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홍 일병은 2016년 군의 의료과실로 사망했다. 입대 전 건강했던 홍 일병은 3월6일 갑자기 구토하고 몸에 멍이 드는 이상증상을 보였다. 홍 일병이 연대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자 민간병원 의사는 혈액암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군의관은 응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감기약만 주고 돌려보냈다. 위독해진 홍 일병은 국군춘천병원 검사에서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24일 사망했다.

군은 빠르게 홍 일병에게 순직 3형을 부여했다. 순직 3형은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 없는’ 훈련 중 사망한 경우 받는다. ‘직접 관련 있는’ 직무 중 사망하면 받는 순직 2형이나 ‘위험을 무릅써야’ 받는 1형보다 예우가 낮다.

홍 일병의 부대는 당시 사단 전면전 작계시행훈련 중이었다. 홍 일병이 근무했던 부대 대대장과 사병들은 모두 홍 일병이 “국가수호훈련 중 사망했다”고 진술했지만 군은 홍 일병에게 2형이 아닌 3형을 부여했다. 보훈처도 국방부 결정을 근거로 홍 일병을 국가유공자가 아닌 보훈대상자로 분류했다.

박씨는 “현충원에 아이를 묻을 때까지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아들이 의료과실로 사망한 사실도, 순직에 1·2·3등급이 매겨진다는 사실도, 이에 따라 유공자와 보훈대상자가 나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박씨는 “당연히 국가가 알아서 잘 해줬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8년 홍 일병이 군 과실로 사망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씨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박씨는 아들이 군에서 적절한 치료와 진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훈련 중 사망한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이에 박씨는 아들을 유공자로 변경해달라고 보훈처에 재심을 요청했다.

박씨는 “그때부터 국가기관들의 책임 미루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보훈처는 국방부가 순직 3형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재심 요청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를 찾아 순직 유형을 먼저 변경하라고 했다. 국방부 심사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규명위) 판단이 나올 때까지 미뤄졌다. 군사망규명위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여간 조사한 끝에 홍 일병의 순직 유형을 2형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홍 일병이 위장크림을 바르고 영내에 대기하는 등 훈련에 참여했고 이 훈련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으므로 ‘훈련 중 사망’한 2형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군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유족은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찾아 순직 유형 변경을 신청했으나 국방부는 2021년 3월 다시 기각했다. 공식적인 사유는 급성 백혈병 발병이 군 복무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방부 심사단장은 박씨에게 구두로 다른 설명을 했다.

박씨는 “심사단장이 저한테 군사망규명위 핑계를 댔다”면서 “위원회가 순직 유형 변경 의견을 본문이 아닌 주석으로 달았고, 국방부에 직접 권고 조치를 하지 않아 기각했다고 하더라”고 했다. 보훈처에서 국방부로, 국방부에서 군사망규명위로, 군사망규명위에서 국방부로 넘어간 끝에 국방부가 위원회를 탓하며 순직 유형 변경 신청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아들을 앗아간 국가기관이 돌아가면서 ‘그 정도로 중요한 죽음은 아니다’라고 말한 꼴”이라고 했다.

국가가 책임을 미루는 동안 유족은 투사,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박씨는 “국방부와 보훈처, 그리고 법정까지 오가며 아들의 명예를 위해 싸워야 했다”면서 “유족이 법을 공부하고, 직접 군의 논리를 반박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군이 모든 걸 알아서 해준다고 해도 고맙지 않은데 명예에 대한 입증을 유족이 하고, 이를 두고 군과 싸워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한 군 관계자가 ‘똑똑한 유족이 똑똑한 결과를 만든다’고 하더라. 돈과 시간이 여유로운 유족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족들은 군이 죽음에 등급을 매기면 보훈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의 죽음이 덜 중요한 죽음이라는 국가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유족이 여기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하면 유족은 자식의 죽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국가는 덜 중요하다고 맞서는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다.

“가끔은 병역기피자 기사를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해요. 이러면 안 되지만, 내가 돈이 없고 빽이 없어 우리 애가 군에 갔나 싶어서. 보훈이 치유의 과정이라면, 적어도 유족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이홍근·강은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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