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협상학자’ 이달곤…“협치 사라진 정치, 삼류 연예정치 됐다” [헤경이 만난 사람]

2023. 6. 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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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학서 협상학 전공…서울대서 국내 첫 협상학 강의한 1세대
‘협치 실종’ 21대 국회에 “질투정치 아닌 정책 통한 민생정치 필요”
12조원 규모 진해신항 사업 추진…‘상생특별법 제정’ 밑작업
日오염수 사태에 ‘방사능·원전 피해도 재해 인정’ 법 개정 추진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이승환·김진 기자]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재선·경남 창원시진해구)에겐 ‘타이틀’이 많다. 행정학자이자 전직 행정안전부 장관, 재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그리고 ‘대한민국 1호 협상학자’…. 1980년대 미국 유학시절 처음 학문으로 ‘협상’을 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지만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전공으로 삼았다. 민주화 이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가 타오르던 때였다. 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의 손에서 국내 최초의 협상학, 갈등관리론, 조정중재론 등 대학 강좌가 열렸다.

이 의원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분권과 분산, 자유와 권리가 확정되는 협상이 필요한 게 민주주의”라며 “귀국하자마자 노태우 정부에서 노사문제가 터졌고,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 내가 엄청나게 바빠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개설한) 과목들이 전국 대학에 퍼지고, 학회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논문에 내가 만든 개념들이 쓰이는 걸 보면서 학문을 도입한 사람으로서 큰 의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1호 협상학자가 보는 21대 국회의 모습은 어떨까. 이 의원은 “한국 정치는 삼류 연예정치로 타락했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국사(國事)라는 큰 무게를 다루는 일이 연예화됐다. 재미도 있어야겠지만 그게 주류가 돼선 안 된다”며 “상대를 공격하고, 죽이기 위한 질투 정치가 아닌 정책을 통한 민생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여야 협상 실종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사례로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갈등 조정 장치인 ‘안건조정위 무력화’를 꼽았다.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로 열리는 안건조정위는 여야 동수가 90일 동안 이견을 조정하는 절차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여야 동수(각 3명) 외에 자당을 탈당한 의원을 무소속 몫에 배치하며 사실상 3대 4 구도로 재편, 조정 기능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 의원은 “꼼수를 쓰니까 불신이 생겨버렸다. (여당으로선) 질 게 뻔하니 처음부터 참여하지도 못하고, 피켓을 들고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상의 범위는 갖고 들어가되, 결론을 정해놓고 가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국회는 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면, 양곡관리법이 아니면 안 된다며 협상하지 못하고 대통령 거부권까지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성 지지층이 주도권을 쥔 팬덤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드러냈다.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부위원장인 이 의원은 전국위처럼 전통적인 의사결정기구의 역할 강화를 통해 정치의 기능을 일부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의원은 “정당이 지금 스마트폰으로 바로 소통하는 정도로 발전됐다”며 “(부작용으로) 소위 ‘개딸’이나 ‘수박’ 등이 언급되면서 유튜브 등에서 상당히 극단적으로 몰고 가려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만으로는 나라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내는 전반적인 스펙트럼을 들어야 한다”며 “전국위는 그런 기구로서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분명한 태극기처럼, 극단적인 성향은 한국의 운명 같기도 하다”면서도 한국 정치 문화가 발전할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과거 고건 전 총리와 화장(火葬)장려 운동을 했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추억도 꺼냈다. 그는 “부모님 사후 이틀 만에 화장하는 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빠르게 변했다”며 “유독 노사관계와 정치에서 협상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지만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역할은 이 의원의 지역구에서도 요구되고 있다. 2041년까지 20년간 총 12조원이 투입되는 ‘진해신항 건설 사업’이다.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항만으로 도약하겠다는 진해신항 사업은 올해 1단계 사업 예산(1293억원)이 확정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항만 완공시 생업을 잃게 될 어업인들의 일자리, 수 톤짜리 대형선박·트럭의 잦은 출입으로 발생하게 될 소음·먼지 문제를 겪게 될 인근 주민들의 우려는 넘어야 할 산이다.

이 의원은 “사업지 뒤에는 주민 5만명이 산다”며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공급자 입장에서 보겠지만 고기를 잡다 생업을 관두는 사람, 공사기간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문제를 생각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안으로 진해신항과 주변 지역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상생발전 특별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대형 인프라 사업의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촉진법’에 머물지 않고 한발 나아간 법안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의원은 “배후지역 주민들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돈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일자리 등 지역을 안정시키는 3안(安)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반대 여론에도 진해신항 사업을 밀어붙인 건 ‘가족의 터전’이란 남다른 애정 때문이다. 6남매 중 넷째인 이 의원의 형제들은 모두 진해 주민이다.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과 서울, 미국에서 공부를 한 이 의원이 진해에 자리잡은 것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배경이 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여당 간사,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 등 원내 주요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주 목요일마다 진해에 내려가 월요일이면 국회로 돌아오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의원은 자서전 ‘이끌림’에서 미국 하버드 유학생활 당시 어린시절 듣고 자란 아버지의 워낭소리를 환청처럼 듣곤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전체 290쪽에 달하는 그의 자서전 마지막 40쪽 분량의 ‘인생 단상’에는 이 같은 가족 관련 일화가 빼곡하다. 이 의원을 오래 알고 지낸 여권에서도 그의 출마 배경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의원은 이날도 “내가 진해를 대표하는데, (이 사업으로) 진해가 손해를 보면 내가 가만히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 의원의 진해 사랑은 행안부 장관 시절 지휘한 일명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통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야권을 중심으로 졸속 통합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가 탄생하며 결국 대형 종합병원이 들어서고, 특례시 지위를 받는 등 지역 발전의 마중물이 됐다.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행정 통합을 통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대표 사례가 됐다.

이 의원은 “당시만 해도 ‘진해를 팔아먹었다’는 말을 들어서 가족들이 힘들어했다”며 “그래서 선거로 한번 평가를 받아보자고 했던 거다. 이제는 그런 말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행안부 장관 임기를 마치고 열린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석패한 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간사직을 맡고 있기도 한 이 의원은 인구 위기 극복 방법으로서 행정 통합을 여전히 강조한다. 그는 “학교에 가면 학생이 20명도 없고, 한 학년당 5명뿐”이라며 “‘네 아들 동창회가 5명짜리면 좋겠냐’라고 물어보면 통합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했다. 소지역주의가 뿌리깊은 지역일수록 당장의 이익을 두고 행정 통합을 반대하지만, 미래를 위해 가야 할 방향이란 데엔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통합에 대한 반감을 감안하면서 통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행정과 재정을 통합하되,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는 그대로 놔두는 고단수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안 중 또 다른 관심사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다. 방류 시점이 다가오면서 바닷가인 그의 지역구도 타격을 입었다. 야당이 제기한 오염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며 수산물 소비가 줄어들자, 지역 어민들의 매출이 하루아침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로서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는 전략도 그의 몫이다.

이 의원은 “수산물 괴담을 만들어선 안 되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어민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피해가 생기면 어떻게 복원을 해야 하는지, 과학적 절차에 흠결이 있으면 어떻게 전문가를 키우고 보완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이런 정치가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재난·재해를 구조하고 지원하는 법이 있는데, 태풍이나 냉해에 따른 피해는 다뤘고 방사능이나 원전 관련 사고는 빠져 있다”며 “그런 개념을 넣기 위한 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추가 조치도 제시했다. 이 의원은 “(정부에서) 현재 한반도 주변 해역의 92개 정점 해수를 주기마다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문제가 없었다”며 “문제가 되는 양식업 지역에 대해서 정점을 더 잡아서 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수산물 판매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론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내년 22대 총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 지난 대선 기간 지역구에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번만 더 도전하겠다’며 일찌감치 출마선언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성공뿐 아니라 학계 전문가이자 입법·행정부를 거치며 쌓인 경험을 정치를 통해 생활에 녹이고 싶다고 했다.

이 의원은 “30년 동안 교수생활을 하다 보니 ‘저거 내가 하면 바꾸겠는데’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실제로 이론과 경험이 결합했을 때 국가 일을 논할 수 있겠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론이 적용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 세상에 다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며 “혼돈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걷는 것이 정치”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최근 21대 국회 마지막 예산결산특별위원에 선임되기도 했다. 이번 인선 소식은 남다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각 지역구 예산 및 사업을 확보하려는 의원들로 어느 때보다 경쟁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행정부 수장과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지낸 전문가로서 경험을 인정받아 위원에 올랐다.

전체 국회의원 299명 중 예결위원은 단 50명으로, 이 중 국민의힘 몫은 19명이다. 예결위원 중 경남 지역에서는 이 의원과 서일준 의원(경남 거제시)이 유일하다. 예결위는 야당 인선이 완료되는 대로 2022년도 결산안 심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이 의원은 경남 예산 확보에 집중할 방침이다.

그의 지역구가 있는 창원시의 경우 주요 사업(63건)의 국비 확보 목표액은 1176억원이며, 내년 전체 국비확보 목표액은 1조7712억원이다. 진해시 지역구 예산과 관련해서는 ▷진해신항 항만비즈니스센터 건립 ▷웅동1동 종합복지관 건립 ▷신항지역 문화도서관 건립이 우선순위다.

soho09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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