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 경찰국가와 양회동 열사

한겨레 2023. 6. 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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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 10일 오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분신해 숨진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회동 씨의 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기고] 김세균 | 서울대 명예교수·백기완노나메기재단 고문

제133주년 국제노동절인 지난 5월1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가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을 시도했고 다음날 숨졌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외친 대통령은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일 것이다. 최근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 의회에서 그는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Alliance of Freedom, Alliance in Action)을 힘껏 제창하기도 했다. 한국이 독재와 권위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는 것이 그의 원대한 꿈이기도 하다. 이 정도라면 그를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전도사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주야장천 외쳐대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는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그는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역량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열렬한 신봉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자유, 인권이란 ‘기업 활동의 제한 없는 자유’(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일체의 사회적 규제의 철폐)와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업인의 제한 없는 권리이며,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본질에서 그런 자유와 권리를 정치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주의다. 그는 시장전제정(market despotism)을 옹호하는 (기업 활동의 자유만을 절대시 여기는)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자유주의의 유보 없는 지지자이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는 바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런 시장전제정의 외피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이다.

시장전제정은 노동자들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나가라 하면 군말 없이 나가고,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는 존재로 전락시키려고 하며, 노동자들끼리의 관계를 서로 물고 뜯는 적대적 경쟁관계로 만들려고 획책한다. 시장전제정은 자본에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체제지만, 노동에는 비자유와 무권리를 강제하는 체제이다. 시장전제정은 또한 돈의 위력 앞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하며, 그 결과 부자에게는 천국을, 가난한 다수 대중에게는 지옥을 안겨주는 야만적 사회의 성립을 촉진한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주의 체제가 단순히 시장전제정의 외피로서만 기능하기는 쉽지 않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체제를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는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검찰과 경찰을 자신의 수족으로, 여당을 하수인으로 삼아 야당은 물론 사회 전체를 권위주의적으로 복속시키려고 획책하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전형이다.

시장전제정은 노동자들이 개체로서가 아니라, 단결된 힘으로 자본 앞에 출현하는 것을 배격한다. 윤석열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를 기득권 세력으로, 노동조합을 미조직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는 그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켜 시장전제정 체제를 완성하려 획책하고 있다. 이런 시도의 주 표적이 현시점에서는 민주노총과 건설노조가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해서 건설노조 탄압을 지시하자 검찰은 그간 압수수색 19회, 22명 구속, 1천명 이상 소환조사를 강행했고, 경찰은 50명 특진까지 내걸고 노조 비리 찾기(사실은 비리 만들기)에 나섰으며, 노동자 투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모르는 ‘권위주의적 경찰국가’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친자본 반노동 권위주의적 경찰국가의 탄압에 항의해 자신을 불태운 양회동 열사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은 노동자도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고, 황폐화하고 있는 사회를 구하는 일이다. 6월17일 오후 5시 청계광장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개최되는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범시민 추모제’와 뒤이어 있을 행진에 우리 모두 함께 참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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