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힘’과 김진태의 진실

이세영 2023. 6. 1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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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영화 <강원도의 힘> 포스터.

[편집국에서] 이세영 | 전국부장

홍상수 감독의 1998년 작 <강원도의 힘>은 불륜으로 엮인 유부남 대학강사 상권과 20대 제자 지숙이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홍상수표 영화가 그렇듯, 지식인과 프티 부르주아지의 위선과 속물근성이 ‘하이퍼리얼’ 수준에서 재현된다. 지숙과 관계를 정리한 상권은 후배와 놀러 간 설악산 입구에서 젊은 여자를 유혹하려다 실패한 뒤 나이트클럽 접대부를 숙소로 불러 잠자리를 갖고, 상권의 교수 임용을 축하하려 자리를 마련한 교수들은 ‘술을 진탕 마시고 하는 섹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관해 지질한 대화를 이어가는 식이다. 비루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것들의 카니발이다.

개봉 직후 영화를 본 교수 몇 사람이 “교수 사회를 음해한 쓰레기 영화”라고 비분강개했으나, 내가 속한 대학원생 커뮤니티에선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해 가을 우리는 산을 낀 강원도 해안도시로 엠티를 갔고, 홍상수 영화와 교수들 뒷담화를 안주 삼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홍상수는 천재요, 교수들은 쓰레기, 강원도는 멀어서 그리운 낙원이었다.

시간이 흘러 직장과 가정이 생긴 우리 세대에게도 강원도는 편하게 자주 찾는 휴양지가 됐다. 1박2일로도 버거웠던 설악산행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해지기 전 돌아올 수 있는 ‘조금 긴 북한산행’이 됐고, 멀어도 좋았던 강원도의 숲과 산은 가까워서 더 소중한 ‘최후의 자연’이 된 것이다.

이 강원도의 법적 지위에 지난 11일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중앙정부로부터 규제와 간섭을 덜 받는 ‘특별자치도’가 된 것이다. 시·군 단위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이 강원도에 주어졌고, 도지사가 지정하는 ‘산림이용진흥지구’ 안에선 케이블카와 노면전차, 모노레일 같은 궤도시설 설치가 가능해졌다. 절대농지 해제 권한도 강원지사가 갖게 됐다. 환경·산림·농업 등 분야에서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자치권이 주어진 것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의 불안감은 크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강원특별자치도법 토론회’에선 “무책임·무분별한 개발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강원도를 통제할 수 있는 중앙정부의 감시와 견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지금까지 보여온 극단 행보를 떠올리면 충분히 수긍 가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귀담아들을 얘기는 김진태 지사의 말에도 있었다.

지난달 17일 그는 강원포럼 영상메시지에서 “중앙정부가 통제하면 환경이 보호되고, 지방정부가 통제하면 환경이 파괴되느냐”고 물었다. 얼마 전 <강원도민일보> 특별기고에선 “아름다운 추억의 이면에는 강원도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는 더 이상 수도권 주민들의 미래를 위해 남겨 놓은 땅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방자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선, 좀처럼 반박하기 쉽지 않은 말들이었다.

<강원도의 힘>은 1998년 청룡영화제에서 감독·각본상을 받고,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강원도의 힘’은 이후 로컬 상품을 홍보하거나, 선거나 중요 이벤트를 앞두고 지역민의 결집과 지지를 호소할 때 구사되는 상투어가 됐다. 하지만 그 힘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나로선 ‘휴식과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힘’ 정도가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측해볼 뿐이다.

실제 영화 속 상권과 지숙 역시 일상의 고통과 번뇌를 다스리려 강원도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교수들과의 시답잖은 술자리에 염증을 느낀 상권이 늦은 밤 지숙을 찾아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니까 위로와 망각,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도록 욕망되는 존재가 강원도인 셈이다.

늦은 밤 연락받고 나온 지숙이 술 취해 앉아 있는 상권을 말없이 끌어안는다. 영화 포스터 속 흑백 스틸컷의 그 장면이다. 이어지는 모텔 신. 집요하게 무리한 행위를 청하는 상권을 뿌리치며 지숙이 매몰차게 쐐기 박는다. “나도 좀 살아야 되겠어요.”

시간과 더불어 속되어진 탓일까. 25년 만에 떠올린 지숙의 대사가 “우리는 당장 지금부터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김진태 지사의 항변과 겹쳐 들린다. 나이 들수록 자신 없어지는 것 투성이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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