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입양기관? 색안경 내려놓고 제대로 살펴봐야

한겨레 2023. 6. 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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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연합뉴스

[왜냐면] 정은주 | <그렇게 가족이 된다> 저자

“입양됐다 파양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이렇게나 큰 건물이 세워지더라고. 멀리서도 너무 잘 보이게.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아주 끔찍했지. 버려질 때마다 여기로 다시 왔으니까.”

2020년 방영한 드라마 <하이에나>의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이 한 말이다. 그가 올려다보았던 건물은 미디어가 입양기관의 ‘돈벌이’를 비판할 때 흔히 거론하는 장소를 연상케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다.

최근 터진 봇물처럼 언론에 쏟아지는 해외입양 보도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입양기관이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불법과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가운데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이나 왜곡된 내용이 보도에 끼어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럽으로 입양된 ㄱ씨는 자신의 출생장소를 아는 데에만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증언했다. 어느 길거리에서 태어났다거나 ○○경찰서에서 발견됐다는 식의 엉터리 정보를 입양기관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양인과 담당 복지사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주고받은 이메일이 입양기관에 그대로 남아있다. 입양인이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해외입양을 보낸 생모 ㄴ씨는 입양기관 쪽이 아들과의 재회를 돕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나중에 상봉한 아들은 기관으로부터 편지와 연락처를 계속 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생모에게 연락을 못 했다는 것이다. 입양기관에 대한 생모의 왜곡된 증언이었다. 그 밖에도 입양기관을 취재하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은 반문한다. “입양기관의 거짓된 증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홀트아동복지회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다. <후(Who)? 스페셜(Special) 홀트부부>(다산북스 출판)라는 학습만화였다. 책 내용을 보면, 홀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마련한 50만 달러를 한국 고아들에게 쏟아부었으며, 이는 지금의 가치로 수천억 원에 해당한다고 했다. 홀트가 비행기를 통째로 빌려 의자를 일부 떼어내고 입양 가는 아기들이 누울 수 있게 만든 이유도 세세히 나와 있었다(해당 전세기 사진은 현재 ‘아동수출’이라는 비판 자료로 쓰인다). 입양조차 불가능한 장애아동들을 위해 일산복지타운을 세우는 데에 일생을 바친 홀트 부부는 그곳에서 임종해 묻혔다.

그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입양기관이 돈벌이에 매진한다니 참으로 의아했다. 그러나 언론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말을 빌려 근거가 부족한 보도를 일삼았다. “수수료 수익이 훨씬 크다는 이유로 입양알선기관들이 국내 입양보다 국외 입양에 주력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한겨레> 5월17일치 사설) 의혹이 난무한 가운데 입양기관의 실제 수수료 사용 내용과 집행과정에 대해 세세히 취재한 언론은 없었다. 법인 전체 예산을 해외입양 매출로 둔갑시키는 보도도 등장했다. 한마디로 입양기관은 만인의 적이 됐다.

당시 보육시설에서 보내온 입양서류에 따라 입양기관에서 호적을 만든 것은, 생부모의 출생신고 자체가 의무사항이 아니었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다. 언론은 이를 신분 조작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이름 붙였다.

한편, 아이를 팔아 호화건물을 세웠다는 비난에 대해 홀트 쪽 말을 들어봤다. “1968년 9월부터 서울 합정동에 자리 잡게 된 홀트아동복지회 터는 설립자의 자산으로 매입한 곳입니다. 이후 합정동 재개발 사업을 통해 매입사 쪽에서 토지보상금을 제안했으나, 보상금을 받는 대신 이 자리에 존치하기로 결정해 지금의 건물을 받았습니다. 막대한 입양 수수료로 노른자 땅에 건물을 올렸다는 악의적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홀트가 주관한 기자회견에서의 해명이다.

언론은 이제 공공의 적이 돼버린 입양기관에 대해 색안경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취재를 해야 한다. 이는 시설에서 집단양육되고 있는 아이들과 입양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실 찾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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