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에서 소멸로' 그리고 '윤회'…도화지에 응축된 '삼라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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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작은 도화지에 모두 담겼다.
시는 낭송되고, 페이지는 찢기고 버려지고, 하얀 도화지에는 목탄이 거듭 올라탄다.
시를 읽고 찢긴 종이를 받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성'이라면, 찢어진 시집, 까맣게 변해버린 도화지는 '소멸'을 의미한다.
시를 낭송한 연극배우 서진씨와 도화지 앞에 선 오재우 미디어 퍼포먼스 작가가 입은 검고 흰 옷도 '생성과 소멸', 양극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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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나태주·김소월 시 40편, 하얀 도화지에 차곡차곡…"하나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작은 도화지에 모두 담겼다.
시집을 꺼낸 낭독자가 마이크 앞에서 시를 낭송한다. 낭송이 끝나면 페이지를 찢어, 옆에 앉아있는 퍼포머에게 전달한다. 퍼포머는 전달받은 페이지 속 시를 하얀 도화지에 목탄으로 휘갈긴다. 시 옮김이 끝나면 종이를 구겨 뒤로 휙 던지고, 그렇게 종이는 땅바닥에 처연히 내려 앉는다.
시는 낭송되고, 페이지는 찢기고 버려지고, 하얀 도화지에는 목탄이 거듭 올라탄다. 까맣게, 점점 더 까맣게 덮이는 하얀 도화지는 결국 온통 검정색으로 변해버렸다.
윤동주와 김소월, 나태주 시인의 작품 40편은 그렇게 하얀 도화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들의 시에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고통, 사랑, 그리움, 연민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이 함축돼 있다. 삼라만상이 작은 도화지에 모두 담겨, 가장 아름다운 검정색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일 수 있는 셈이다.
한국 아방가르드의 대가 김구림 작가(87)의 퍼포먼스가 14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에서 진행됐다. 7월16일까지 열리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과 연계된 행사의 일환이다.
퍼포먼스 작품명은 '생성에서 소멸로'. 시를 읽고 찢긴 종이를 받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성'이라면, 찢어진 시집, 까맣게 변해버린 도화지는 '소멸'을 의미한다. 읽히고, 찢기고, 그려지고, 다시 버려지는 이 모든 것은 '순환'으로 귀결된다.
시를 낭송한 연극배우 서진씨와 도화지 앞에 선 오재우 미디어 퍼포먼스 작가가 입은 검고 흰 옷도 '생성과 소멸', 양극단을 의미한다.
시가 적힌 버려진 종이는 관람객들이 줍는다. 김구림 작가는 버려진 종이에 일일이 서명을 했다.
김구림 작가는 "내 작품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라며 "이번 퍼포먼스는 문학적(시)이고, 미술적이고, 연극·무용적이다. 인간과 식물은 태어나서 소멸된다. 결국 '윤회'의 의미를 이 퍼포먼스 안에서 내가 다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퍼포먼스는 지난 2015년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의 '2023년 한국 버전'이다. 오는 9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는 동일 전시에서는 미국 버전의 '생성에서 소멸로'가 진행될 예정이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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