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청년도약계좌 엉킨 게 은행 책임인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청년 공약으로 청년층의 자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도약계좌'가 마침내 출시된다. 취급은행들이 최대 6.0%의 금리를 제시하면서 5년간 저축하면 최대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어느 정도 지켜질 수 있게 됐다. 다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청년도약계좌를 취급하는 11개 은행들이 기본금리와 우대금리 등을 1차와 2차로 나눠 공시하도록 했다. 1차 공시에서 가장 높은 6.5%의 금리를 제시한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의 금리 수준은 비슷했다. 특히 5대 시중은행 모두 기본금리 3.5%와 우대금리 2.5%로 최고 6.0%의 금리를 동일하게 제시했다.
청년도약계좌가 약속한 '5년 5000만원'이 가능하도록 어떻게든 6% 금리를 끼워 맞췄다. 하지만 기본금리가 너무 낮은 반면 우대금리 조건은 너무 까다롭다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우대금리 요건에 카드결제 실적을 포함시킨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차 공시 이후 금융당국은 은행들에게 기본금리를 기업은행 수준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급은행들과의 간담회에서 "청년계좌는 은행들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것으로, 가장 의미 있는 사회공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상품을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하라는 압박이었다. 애초에 은행들의 1차 공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급은행들이 청년도약계좌에 적용할 금리를 2차례에 걸쳐 공시하도록 한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청년도약계좌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공약은 이미 한차례 크게 수정된 상황에서 '5년 5000만원'은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애초 청년도약계좌는 '10년 1억원' 통장으로 적극 홍보됐다. 최대 10년 동안 매월 40만~7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10만~40만원의 장려금을 통해 1억원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행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5년 5000만원'으로 축소됐다. 정부기여금이 10년에서 5년으로 반토막난 셈이다.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약속했던 목표금액에 맞추려면 은행들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했다.
은행들 청년도약계좌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역마진이 커지는 상황에서 눈치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출시된 청년희망적금에서 0.1~0.2%포인트 차이에도 특정은행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가입자 수 상한을 설정해달라는 요구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은행들이 고금리 시대에 '이자 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사회공헌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방법과 영역까지 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또한 올해 들어서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확대 요구로 금리 인하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등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은행들은 이미 사회공헌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손실 금액을 예측하기 어려운 청년도약계좌를 적극적으로 취급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 은행권은 정부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모습을 보였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정부의 요구를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원하는 수준을 내놨다. 윤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은행들이 앞장섰다.
정부가 은행을 '현금지급기(ATM)'로 생각하는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대통령 공약 이행까지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긴 점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화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연체율 상승 등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권에 계속 짐을 지우는 것이 더 큰 위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강길홍기자 sliz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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