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영혼 없는 공무원

손성진 2023. 6. 1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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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흔한 말이 있다.

전전, 전전전과 다름없이 공무원의 영혼을 털어간 전 정권에서 "영혼 없는 공직자가 되지 마라"는 말을 한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다.

전 정권에서는 영혼을 쉽게 버렸던 공무원들이 갑자기 영혼 수호파로 변신한 것일까.

반대로 말하면 영혼이 없는 직업공무원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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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흔한 말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은 홍역을 치른다. 전 정권의 정책을 뒤집는 일이 빈번한 한국에서는 새 정권이 들어서면 담당 공무원들은 좌천이나 옥살이까지 각오해야 한다. 대부분 강요에 의해 영혼을 버린 공무원들이다. 올해 초 방송통신위원회 과장이 구속됐다. 문재인 정권에서 TV조선 승인 심사를 하면서 고의로 감점했다는 혐의였다. 필시, 자발적으로 한 일 같지는 않은데 책임을 뒤집어쓴 모양새다.

전전, 전전전과 다름없이 공무원의 영혼을 털어간 전 정권에서 "영혼 없는 공직자가 되지 마라"는 말을 한 사람은 문 전 대통령이다.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도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돼라.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고 했다. 듣기 좋은 말이었을 뿐 지켜지지 않았다. 원전을 세월호에 비유한 대통령의 안전(眼前)에서 "통촉하시옵소서"라고 읍소할 공무원은 현세에는 없다.

다시 윤석열 정부. 탈원전은 폐기됐다. 정책이 정반대로 뒤집혔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탈원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말이 들렸다. 2차관이 경질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경질된 차관은 영혼, 즉 소신이 있어서 그랬을까. 차관 경질 후 지금도 산자부 내에서는 원전 되살리기에 발 벗고 뛰는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 정권에서는 영혼을 쉽게 버렸던 공무원들이 갑자기 영혼 수호파로 변신한 것일까. '해바라기' '철새'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일까.

공무원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대통령들마다 이랬다저랬다 하니 '대쪽 소신'과 '복지부동' 사이에서 고민도 많을 게다. 전 정권의 고위직들이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는 미국의 엽관제는 그런 이유에서 합리적이다. 정년을 보장받는 한국의 '늘공(직업공무원)' 관료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처신하기가 몹시 난처한 지경에 놓인다. 피의자 신분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론은? 대의민주주의에서 국가 대사(大事)의 방향 선택권은 국민과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 국회에 있다. 직업공무원은 국가적 정책의 방향을 거스를 권한이 없는 것이다. 전 정권에서 그랬듯이 현 정권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과 국회에 맡기면 된다. 늘공은 영혼을 버려야 국정이 매끄럽게 운영된다. 배알도 없느냐는 비난도 듣겠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국가 정책을 일관되고 신속하게 추진하려면 그래야 한다. 머리와 몸통이 따로 놀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이상적인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 뜻이 그런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영혼이 없는 직업공무원은 죄가 없다. 방통위 과장처럼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단지 전 정권 부역죄란 명목으로 벌을 주는 일만큼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희생양이 되는 하위직 공무원은 더 그렇다. 그러잖으면 차후가 걱정돼서 누가 일을 열심히 하겠는가. 민주국가에서 정권 교체는 정례적인 일이다. 그때마다 적폐청산과 같은 분란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제도화가 필요할지 모른다. 미화가 아니라 영혼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뜻도 된다. 그들을 비아냥댈 것은 더욱 아니다. 공무원의 변신은 무죄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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