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차 포르쉐 디자인하는 한국인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3. 6. 14. 17: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우성 포르쉐 외장 디자이너
포르쉐 첫 전기 하이퍼카 후보
'미션X' 디자인한 주인공
홍대 졸업후 독일서 경력쌓아
포르쉐 최초 한국인 디자이너
"차 그리려면 직접, 많이 봐야"
정우성 디자이너와 그가 디자인한 포르쉐 '미션X'의 모습.

최근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회사 창립 75주년 행사에서 '미션X'라는 2인승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미션X는 75년 포르쉐 역사에 몇 대 없는 초고성능차, 이른바 '하이퍼카'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최종 양산이 이뤄지면 포르쉐 내 첫 순수 전기 하이퍼카가 된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이사회 회장이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양산차 중 핸들링·내구성·승차감을 포함해 종합 스피드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에서 보듯이 미션X는 포르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미션X를 디자인한 주인공이 정우성 포르쉐 선임 외장 디자이너다. 포르쉐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다. 지난 8일 미션X 공개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 디자이너는 어느 날 혜성처럼 갑자기 떠오른 인물은 아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한 후 폭스바겐 디자인센터 포츠담을 거쳐 2012년 포르쉐에 합류했다. 이곳에서 10명 안팎에 불과한 외장 디자이너 자리를 꿰찬 것이다.

신차 개발이 확정되면 포르쉐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스케치를 제출한다. 이 중 한 명만이 프로젝트 '리드(선임) 디자이너' 자격을 얻고, 경우에 따라 보조 디자이너가 붙는다. 프로젝트별 공정 배분 같은 것은 없다. 제일 잘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차를 독점하는 구조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 디자이너는 한 번도 '리드' 자격을 놓치지 않았다. E3 카이엔(사전 개발)을 시작으로 992 카레라(사전 개발)·J1 타이칸(사전 개발)·911 GT2 RS(양산)·919 스트리트(콘셉트)·미션E 크로스 투리스모(콘셉트) 등이 그의 그림대로 탄생했다.

정 디자이너는 "미션X는 포르쉐의 미래지만, 그것이 공개되는 순간 디자이너 입장에선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된다"며 "늘 미래 이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게 자동차 디자이너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미래 이후의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걸까. 또 어떻게 그의 디자인이 세계에서 가장 콧대 높은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쉐에서 선택받은 걸까.

그는 "헤리티지(유산)와 친환경은 포르쉐 같은 다국적 자동차 브랜드 차량 디자인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기본 중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션X 헤드라이트 디자인만 해도 포르쉐 906·908 같은 역사적 레이싱카에서 영감을 받았고, 공기역학 차원에선 앞에는 20인치, 뒤에는 21인치 휠을 장착했다"고 소개했다.

디자인 역량을 기르는 방법을 묻자 그는 "'핀터레스트 디자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시회를 다니며 실제 차량을 보는 것을 게을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사진 등을 통해서만 학습하는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정 디자이너는 특히 "젊은 한국인 디자이너들에게서 이 같은 모습을 자주 본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전 세계 예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포르쉐 인턴직에 지원한다"며 "심사를 하다보면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그림 실력은 뛰어나지만 독창성이 떨어져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디자이너 자신도 경기고 재학 시절 국내에서 열린 자동차 전시회는 빼놓지 않고 봤고, 비싼 해외 자동차 잡지·책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사서 돌려봤다. 지금도 쉬는 날이나 휴가 때에는 무조건 자동차를 보러 다닌다.

다국적 완성차 브랜드에 입사하면 또 다른 차원의 경쟁이 시작된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종류의 자동차를 보며 자란 유럽·미국인 디자이너들과의 토론은 늘 버겁다.

정 디자이너는 "포르쉐 같은 브랜드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인 디자인을 충분히 설득하고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언어는 물론, 헤리티지·친환경 흐름·첨단 기술 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슈투트가르트(독일) 이유섭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