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한중국대사가 쏘아 올린 한중 외교 마찰

2023. 6. 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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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중 관계는 악화 일로다. 양국 관계 긴장의 중심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중국대사관저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미 밀착 기조를 겨냥한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한중 관계 악화의 원인은 한국에 있고,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양국 간 선린 우호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일국의 대사가 오히려 양국의 우호 관계를 저해하는 발언을 내뱉음으로써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싱 대사는 2020년 1월 한국에 부임한 이후 3년 내내 설화로 논란을 빚어왔다. 부임 직후인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한국 정부의 입국제한 조치에 대해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2021년 5월에는 MBC에 출연해 김치·한복 문제로 국민 감정이 악화된 것에 대한 책임을 한국인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당시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사드(THAAD) 관련 언론 인터뷰를 대놓고 반박해 '대선 개입' 논란도 일었다. 작년 12월에는 '한중수교 30주년 성과와 전망' 포럼에서 "외교관례상 시진핑 주석의 방한 차례가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순서는 무슨 순서"라고 답해 고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싱 대사의 언행은 때때로 부적절하고 무례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중 우호 증진을 위한 가교보다 불필요한 마찰의 촉매제가 되곤 했다.

우리 외교부는 싱 대사를 초치해 그의 발언이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우리 국민이 정부에 대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상대가 누구든 상식과 규범에 따라 할 말을 하고 국격을 생각하며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외교부가 싱 대사를 초치해 엄중 경고한 것은 적절한 처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외교부의 국장급에 해당하는 주한 중국대사가 부른다고 달려가서 15분을 일방적으로 훈시하듯 발언하는 동안 조용히 듣기만 하면서 망신당하는 야당 총수에게 국민은 실망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한국은 '싱 대사의 언행'을 갈등 증폭의 1차적 원인으로 지목하는 반면, 중국은 "양국 관계 악화의 책임은 한국에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중심 외교 노선'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한중 외교 마찰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 시각부터 엇갈리는 탓에 당분간 갈등 해소를 위한 출구전략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어설픈 기대와 희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보다 일정 기간 냉정한 상호 재평가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싱 대사의 행동으로 촉발된 최근의 한중 외교 마찰은 그의 개인적 일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의 지침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는 당분간 중국이 한미동맹 강화를 추구하는 한국에 대해 이슈와 사안에 따라 위협과 압박의 강압 외교를 지속할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 중국의 강압 외교에 대한 섣부른 타협과 저자세 외교는 중국에 '한국은 밀면 밀린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주게 될 것이며, 더 강도 높은 압박을 초래할 뿐이다. 중국의 강압 외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상호 존중의 새로운 한중 관계' 수립을 목표로 호혜 평등 관계를 일관되고 원칙 있게 추진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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