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슈퍼카인지 … 24시간 극한질주로 나를 증명하다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3. 6. 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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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돌 맞은 최대 내구 레이스 '르망24' 참관기
지난 10일(현지시간)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르망24시' 내구 레이스에서 포르쉐 펜스케 모터스포츠팀 차량(맨 앞)을 비롯한 레이싱카들이 곡선 구간을 지나는 모습. 포르쉐

"온종일 운전한다"고 했을 때 '종일(終日)'은 통상 5~6시간을 의미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24시간 쉬지 않고 운전하면 어떨까. 가능은 하겠지만 위험할 것이다. 운전자(드라이버) 수를 3명으로 늘린다 한들 여전히 드라이버당 8시간꼴이다. 더 큰 문제는 차다. 몇 십만 ㎞도 달리는데 24시간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주행속도가 200~300㎞면 얘기는 달라진다.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달린 차'를 가리는 레이싱 대회가 있다. 올해로 무려 100년째인 대회다. 프랑스 소도시 르망에서 열리는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 이야기다. 르망24에 출전하는 레이싱카는 13.626㎞ 길이 '라 사르트 서킷'을 빠를 땐 320㎞ 속도로 300여 바퀴 돈다. 이런 대회를 '내구(Endurance) 레이스'라 한다. 누가 가장 빨리 달리면서, 동시에 가장 오래 버티는지를 겨루는 경주다.

내구 레이스 대회로는 물론, 모터스포츠 통틀어 세계 최고 대회로 꼽히는 르망24를 매일경제가 밀착 취재했다.

전 세계에서 무려 32만5000명에 달하는 모터스포츠 팬이 100돌을 맞은 르망24를 찾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오후 4시부터 11일 오후 4시까지 쉼 없이 이뤄진 경기와 현장 분위기를 생생히 전한다.

올해 르망24는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100주년을 맞아 여러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르망24 참가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초고성능 레이싱카가 참가하는 '하이퍼카 클래스'에서만 19차례 우승하며 최다 기록을 보유 중인 독일 포르쉐가 6년 만에 르망에 돌아왔다. 이탈리아 대표 슈퍼카 브랜드이자, 최상위 클래스 우승 경험이 9번 있는 페라리는 1973년 이후 50년 만에 하이퍼카 클래스에 참가했다. 프랑스 대표 자동차 브랜드 푸조조차 마지막으로 르망24에서 달린 게 12년 전이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산하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도 20년 만에 프랑스 소도시를 찾았다.

2023년 '르망24시' 내구 레이스가 열린 프랑스 르망의 '라 사르트 서킷'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 ACO

올해 하이퍼카 클래스에 참석한 완성차 브랜드는 △포르쉐(3대) △도요타(2대) △캐딜락(3대) △페라리(2대) △푸조(2대) 등 5개였고, 그 외에 슈퍼카 레이싱팀 차량까지 포함해 총 16대가 자웅을 겨뤘다.

그럼 그동안 누가 하이퍼카 클래스를 지켜왔을까. 일본 도요타다. 도요타 '가주(Gazoo)' 레이싱팀은 포르쉐가 르망을 떠난 2018년부터 작년까지 무려 5년 연속 최상위 클래스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르망24에서 포르쉐의 복귀는 '왕의 귀환'을 의미했다. 이를 의식한 듯 포르쉐도 칼을 갈았다. 포르쉐는 올해 브랜드 창립 75주년을 맞았다. 독일에선 100년 기준 4분의 3이 되는 해이다 보니 75주년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 때문에 포르쉐 출전 차량 3대 중 1대가 75번을 달았고, 가장 이름 있는 레이서 3명이 75번 차량에 배치됐다.

이처럼 포르쉐를 비롯한 막강 글로벌 브랜드 참전 속에 도요타는 지난 5년의 성적이 결코 '빈집 주인 행세'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할 처지였다.

지난 10일 오후 4시(현지시간)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르망24시' 내구 레이스에서 페라리 초고성능 하이퍼카(맨 앞 2대)를 비롯한 수십 대의 레이싱카들이 일제히 24시간 레이스를 시작하고 있다. ACO

그렇다면 왜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는 한동안 르망24를 외면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돈이었다. 세계 최고 슈퍼카 경주대회 우승을 위해 브랜드들은 많을 땐 연간 무려 2억유로(약 2700억원)를 쏟아부었다. 실적관리를 해야 하는 기업에는 부담이 되는 액수다. 24시간 달리는 레이스이다 보니 각종 변수로 발생하는 사고도 적지 않았다. 1955년에는 차량이 관중석으로 돌진하면서 84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100주년을 맞는 동안 사망한 드라이버 수는 2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르망24 흥행을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우선 하이퍼카 개발 등의 비용을 약 2000만유로 선까지 낮추도록 했다. 서킷엔 '포르쉐 커브스' 등 과속을 막기 위한 코스를 꾸준히 넣었고, 1회 최장 운전 시간 제한 등과 같은 드라이버 보호 장치도 강화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포르쉐·페라리·푸조·캐딜락 등 브랜드가 르망에 돌아오게 됐고, 내년엔 BMW·람보르기니·알핀 등이 하이퍼카 클래스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명실상부한 내구 레이스의 '끝판왕'을 가리는 대회로 부활하는 셈이다.

밤 10시가 지나야 해가 질 정도로 1년 중 해가 가장 길다는 6월 둘째 주의 토요일 오후 4시. 16대의 하이퍼카와 한 단계 아래 클래스인 LMP2(24대)·GTE Am(21대) 차량이 일제히 24시간 레이스를 시작했다.

경주 시작 후 얼마 안 돼 캐딜락 차 한 대가 벽을 박으면서, 바로 세이프티카(안전을 위한 속도 제한용 차량)가 서킷에 진입했다. 얼마 후에는 중국인 최초의 르망24 하이퍼카 클래스 드라이버가 된 영국 '허츠 팀 조타'의 이페이 예가 몰던 '포르쉐 963'이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경주 초반 벌어진 사고보다 놀라웠던 건 빠른 복구력이었다. 차량을 수리하는 공간인 '피트 개러지'에 들어갔다 나온 두 차량 모두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16대의 하이퍼카 중 가장 먼저 라 사르트 서킷을 떠난 건 유력 우승 후보였던 포르쉐 75번이었다. 경주 시작 불과 7시간 만에 연료압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포르쉐 5번·6번 차량에서도 문제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포르쉐는 9위(5번 차량)로 르망24를 마무리했다. 그 밖에 2대의 도요타 하이퍼카 중 한 대인 7번 차량도 문제가 생기면서 103바퀴를 끝으로 레이스를 포기했다.

최종 우승은 '499P'로 끝까지 레이스를 펼친 페라리 51번이 차지했다. 역대 10번째 우승이었다. 페라리 51번은 24시간 동안 4569.4㎞를 달렸고, 서킷을 총 342바퀴 돌았다. 도요타는 6년 연속 우승엔 실패했지만, 8번 차량이 2위를 차지하며 지난 수 년간의 우승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대회 전엔 주목받지 못했던 캐딜락이 3~4위를 휩쓸면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르망24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레이스 결과에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 포르쉐 펜스케 모터스포츠팀의 모습이었다. 경주 자체만 보면 올해 르망24에서 포르쉐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 '브랜드 알리기'를 기준으로 보면, 포르쉐는 페라리 못지않은 승자였다. 일례로 트랙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투입되는 세이프티카가 모두 포르쉐였다. 트랙 일부인 포르쉐 커브부터 포르쉐 익스피리언스 센터, 포르쉐 기념품 가게 등에 이르기까지 르망24 구석구석 포르쉐가 없는 곳이 없었다.

[르망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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