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연매출 100억 찍기까지…기회의 뒤통수에 머리카락 없는 이유 [커리업]
동료 먹이던 라멘, '쌤쌤쌤' 1등 잠봉뵈르 파스타 된 사연
고시 접고 떠난 세계 여행길, 요리의 묘미를 알다
요리학교 졸업장 따위…무턱대고 ‘나 여기서 일해도 돼?’
"이거 망하면 진짜…" 목숨 걸고 만든 용리단길 '쌤쌤쌤'
기회의 뒤통수엔 머리카락 없어 지나면 붙잡을 수 없다
편집자주
'현대인의 일'을 탐구하는 콘텐츠 실험실 커리업이 시즌2를 시작합니다. 시즌2에서 커리업은 지난해 연재한 '일잼원정대'를 잇는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 '맨땅브레이커'를 내놓습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를 다룹니다.
![[커리업] 맨땅브레이커 3호,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제작= 김유진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4/hankooki/20230614141818869omng.png)
요리학교 졸업장 하나 없던 ‘무근본’, 길 위의 요리사
서울 한복판에 샌프란시스코와 파리 소환, 연매출 100억 찍기까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 용산 대로변을 살짝 빗겨 난 골목, 붉은 천막 아래 햇살이 쏟아지는 이곳의 테라스에 다다르면, 어디선가 태평양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정취를 그대로 옮겨놓은 레스토랑 ‘SAM SAM SAM’(이하 쌤쌤쌤)은 성수, 한남에 이어 지금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 용리단길의 터줏대감이자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위 서울 '핫플' 10곳 중 8곳은 반짝 등장했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그 치열한 도시 한복판에서 이곳은 2년째 평균 웨이팅이 2시간이에요. 앞으로도 대기줄의 기세가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근성 있는 핫플’이죠.
‘쌤쌤쌤’을 끼고 코너를 돌아볼까요. 이번엔 프랑스의 파리가 아담하게 펼쳐집니다. 고소한 버터 냄새를 따라가 만난 이곳은 크루아상 전문 베이커리 ‘테디뵈르 하우스’인데요. 잠봉햄을 넣은 페이스트리부터, 도넛처럼 설탕을 입혀 구운 크루아상까지 독특한 디저트빵들이 별세계처럼 펼쳐져요. 빵 덕후와 카페 순례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이곳 역시 최근 용리단길 웨이팅 기세에 한껏 불을 질렀죠.
신용산을 대표하는 이 두 개의 대장 브랜드를 만든 건 사실 한 사람인데요. 이 인물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청춘영화 한 편이 뚝딱입니다. 요리학교 졸업장 하나 없이 7평짜리 식당의 주방보조로 시작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르꼬르동블루 출신 셰프들이 즐비했던 파인다이닝의 주방에서 그는 ‘무(無) 근본 아웃사이더’였답니다. 주방용 칼 하나 들고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날 때마다 ‘나 일 좀 시켜달라’며 막무가내로 들이밀었죠. 그렇게 전 세계의 음식 문화를 한껏 빨아들였고, ‘잡식성’으로 덩치를 불린 감각은 그를 남다른 식음료(F&B) 기획자로 만들어줬어요.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의 3호 인터뷰이는 연 매출 100억을 달성한 용리단길의 외식업자, 김훈 셰프입니다.
![[커리업] 맨땅브레이커 3호,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쌤쌤쌤의 매장 컨셉은 미국(샌프란시스코), 함께 경영하는 인근의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 하우스의 매장 컨셉은 프랑스(파리)다. 2023.05.17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4/hankooki/20230614141822031zrod.png)
고시 때려치우고 떠난 세계 여행, 길 위에서 요리의 묘미를 알다
고시를 그만두고 나니, 남은 건 ‘실패자’ 꼬리표
두 평짜리 좁은 고시원에서 스물셋 스물넷, 두 해를 났다. 숫자와의 씨름이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회계사 시험에 목숨을 건 시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안 맞는 공부였다. 그럼에도 김훈(이하 훈)은 지독히도 성실했다. 학원에선 제일 먼저 문 따고 들어가, 가장 늦게 짐 싸 나오는 모범생이었다. 하루 4시간 넘겨 자 본 적이 없었다.
그 2년, 연달아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나서야 훈은 깨달았다. “이건 2년이 아니라, 20년을 해도 안 되겠구나.” 온 힘을 쏟아봤기에, 포기하는 마음엔 앙금도 없었다.
“나는 명백하게 실패한 사람이구나, 그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창피해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지?”
스물다섯. ‘실패’라는 그 침침한 오명을 인생에 끼얹기엔 참 싱싱한 나이. 스물다섯 훈씨는 도피가 간절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의 오명 속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고시원을 나오자마자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샀어요.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의 다른 삶이 절박했습니다.
막상 떠나려고 보니 모아둔 돈도 없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찾아보니 그처럼 곤궁한 배낭 여행객들을 위해 자기 집 소파를 공짜로 빌려주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걸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라 부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죠. 첫 행선지, 뉴욕에서 하룻밤 재워줄 호스트를 찾아 헤맸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동양인 남자 여행객은 호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게스트였거든요.
![[커리업] 맨땅브레이커 3호, '쌤쌤쌤' 김훈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 식당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06/14/hankooki/20230614141823578migm.jpg)
궁리 끝에 수를 냈습니다. 메일에 이렇게 적었죠. ‘너 혹시 한국 음식 먹어봤어? 내가 맛있는 코리안 전통밥상을 차려줄게. 대신 네 소파를 빌려줘!' 오방색이 두루 담긴 빛깔 좋은 한식 사진을 정성껏 첨부해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때부터 카우치 수락률이 수직상승했죠. 5년 동안 그의 자취 요리를 책임졌던 주방용 칼을 서둘러 캐리어에 챙겨 넣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훗날 인생 방향타를 얼마나 틀어 놓게 될지 스물다섯의 김훈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죠.
“자취 경력 6년 차로 할 수 있는 한식 요리가 뭐 그리 다양했겠어요. 근데 외국인들이 그걸 너무 좋아해주는 거예요.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든, 같이 뭘 먹고 나면 금방 친해지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칼을 들고 여행 다니는 게 재밌었어요. 어쩌면 요리사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의 힘은 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더라고요.”
그렇게 그는 역마살이 도진 사람처럼, 주방칼을 들고 전 세계를 유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즐겨 만드는 메뉴는 달달한 간장 불고기와 샐러드 느낌의 비빔밥이었죠. 매운맛이 조금만 들어가도 혀를 내두르는 외국인들의 입맛을 배려한 요리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행복감을 보는 거, 요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더라고요. 그건 아마 셰프가 됐든 주부가 됐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원초적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행위죠. 그래서 누군가를 먹인다는 건, 무척이나 다정하고 친밀한 정(情)의 표현이에요. 한 울타리에 속한 이들을 이르는 말, ‘식구(食口)’가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훈씨는 이때 자신이 마치 마법사가 된 것 같았답니다.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 즉각적인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마법 같은 일이었거든요.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안고 귀국한 그가 곧장 향한 곳은 요리학교나 요리학원이 아니었어요. 자취방에서 가장 가까웠던 10평 남짓의 작은 파스타 레스토랑이었죠. 첫 식당에서 만난 메인 셰프는 서른도 안 된 서너살 터울의 또래 형이었습니다. 훈씨는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지만, 셰프 형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전수해줬답니다. 작은 곳이라 직접 해보며 배울 여지가 더 많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요. 주방뿐 아니라 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부지런히 배우며 훈씨는 깨달았죠. ‘어? 나 진짜로 요리를 재미있어 하네?’
“학교보다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게 훨씬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실은 학원 갈 형편도 안 됐고요. 늦게 시작했더라도 감각만 있다면 비전공자라는 약점 같은 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파스타집부터 퓨전 일식집, 브런치 가게, 고깃집까지 진짜 다양하게 일해봤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트렌디한 음식 위주로 도전하면서 알게 됐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건 장사더라고요. 그저 요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요리로 장사를 하고 싶었어요.”
역마살은 나의 경쟁력
학기 중엔 식당 주방일을 도우며 요리법을 익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방학엔 여행길에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집트' 아프리카 종단 여행부터, '이스라엘~요르단' 중동 여행까지. 흔치 않은 여행지만 골라 다녔다.
그를 가장 매혹했던 건 역시 음식이었다. 처음 보는 식재료, 독특한 현지식을 만날 때마다 짜릿함을 느꼈다.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흡수할 수 있는 감각도 다양해졌다. 맛을 보는 안목 역시 점점 더 환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하는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맛을 배우고 흡수하는 공부였다.
훈씨는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날 때마다 무작정 주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들이댔죠. ‘하루나 이틀만 일손을 돕고 싶다. 어떻게 이런 음식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주방의 분위기를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과연 이런 방법이 먹힐까 싶죠? 근데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대요. 열이면 열, 선뜻 주방 문을 열어줬습니다. 자기 음식 맛있다는 찬사 앞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 요리사는 없다는 걸, 훈씨는 그때 다시 한번 느꼈죠. 그렇게 다국적의 레시피를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어느샌가 훈씨의 여행 짐가방엔 조리화와 칼자루가 붙박이로 갖춰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나면 바로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둔 상태였죠.

“아프리카에서는 ‘탄자니안 팬케이크’ 가게에서 일을 했어요. 말이 팬케이크지 반죽에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를 썼거든요. 우리나라의 빈대떡과 진짜 비슷했어요. 신기한 게 쌀로 만들어 유독 쫄깃한 짜파티에다가, 으깬 감자나 카레를 넣더라고요. 프랑스의 크레페 같기도 했어요. 식사 대용으로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게 정말 기막히게 맛있는 거예요.”
값싼 호스텔 2층 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한 끼 식사에 수백 달러는 아끼지 않고 썼습니다. 먹는 데엔 돈을 아끼지 않았죠.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건, 요리사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자 공부였거든요.
“중동에서 후무스를 처음 먹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해요. 병아리콩도 처음 봤지만, 콩으로 만든 스프레드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후무스를 접할 수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 돌아와서도 병아리콩과 참깨 페이스트를 찾아다녔죠. 자취방에서 혼자 만들어보고 ‘이 맛이 아닌데’하면서 좌절하고… 그게 다 공부였죠.”
요리학교 졸업장 따위…무턱대고 물었다 ‘나 여기서 일해도 돼?’

“호주로 간 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한 학기에 학비만 1억 원 가까이 들더라고요. 초반 몇년 여러 주방을 경험하며 기본기를 다지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학교에 들어가려 했죠.”
그는 르꼬르동블루의 졸업장이 필요했고 그 이유는 하나였어요. ‘한국식 이력서’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대졸 사원을 공채로 채용하는 식음료(F&B) 기업들은 경험보단 이력을 요구했습니다. ‘어떤 학교를 졸업했다’는 한 줄의 스펙이, 실제로 그가 가진 역량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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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업의 새로운 연재 '맨땅브레이커'
'커리업'이 한국일보의 디지털 프로덕트 실험 조직인 'H랩(Lab)'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탐사선 H랩은 기존 뉴스 미디어의 한계선 너머의 새로운 기술과 독자,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 가능성과 만나려 합니다. 첫 번째 시도로 자기만의 커리어를 개척한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맨땅브레이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저마다의 커리어의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른 기사와 차별화되는 밀도 높은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360도로 생생하게 담아낸 커리어 현장부터 독자들이 직접 고화질 사진을 확대, 축소해 보며 사진 속 숨은 요소를 둘러보는 재미를 제공합니다. 커리업이 제공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아래의 URL에서 만나보세요.
스튜디오좋 남우리, 송재원 上편 - 우린 '좋' 대로 만들어…광고계의 이단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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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엑스 남세동 上편 - 깨져야 열리지 새로운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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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유진 기자 zoeyful@hankookilbo.com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박길우 기자 gwpark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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