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그만해” 반성 없는 피고인 입에 테이프 붙인 美 판사

박선민 기자 2023. 6. 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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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기회가 오지 않았는데도 계속 발언을 이어간 피고인에게 판사가 테이프를 붙이고 있을 것을 명령했다. /유튜브

“그 입 안 다물면 테이프로 막아버리겠다.” 이 같은 경고를 하고 실제로 피고인의 입에 테이프를 붙여버린 판사가 있다. 바로 미국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카운티 법원의 존 루소 판사다. 중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발언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자 내린 명령이다. 2018년 7월 있었던 일이지만,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지난달 24일 한 유튜브 계정에 다시 올라오면서 재조명됐다.

14일 기준, 이 영상은 조회수가 558만회를 넘겼다. 댓글도 5500개 이상 달렸다. 약 3주 전에 올라왔는데 현재까지도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네티즌은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규칙을 따르지 않은 자에게 더 이상 인내를 베풀 필요는 없다” “피해자들은 말할 기회도 없이 범죄의 대상이 됐을 텐데 같은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피고인 프랭클린 윌리엄스(당시 32세)가 루소 판사의 말을 끊어가며 스스로 변명을 이어간다. 이에 판사가 “그 입 다물라. 차례가 되면 그때 발언 기회를 주겠다”고 경고하지만, 윌리엄스는 멈추지 않는다. 윌리엄스가 계속해서 변명을 늘어놓는 바람에 재판이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윌리엄스 변호인조차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판사가 윌리엄스 입에 바로 테이프를 붙인 건 아니다. 윌리엄스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당신 변호인 말을 들어야 하니 조용히 해라. 알아들었냐”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입 좀 다물어라” “당신에게 말할 기회를 줄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조용히 해라” 등이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되레 판사를 향해 언성 높이며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판사는 보안관리대원들에게 윌리엄스 입에 테이프를 붙일 것을 명령했다. 판사는 윌리엄스에게 “일단 입에 테이프를 붙여놓겠다. 이후 발언 기회가 되면 그때 테이프를 떼주겠다”고 했다. 보안대원들은 윌리엄스 입에 빨간색 테이프를 꼼꼼히 붙였고, 그제야 법정은 조용해졌다.

피고인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보안대원들. /유튜브

윌리엄스는 강도, 납치, 절도, 신용카드 불법사용, 무기 불법사용 등 중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루소 판사는 이 재판에서 윌리엄스에게 24년형을 선고했다.

판사가 피고인 입에 테이프를 붙여버린 이 사건은 2018년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일각에서는 루소 판사의 대처가 지나쳤다는 의견도 나왔다. 판사는 백인, 피고인은 흑인이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 논란도 불거졌다. 피고인 윌리엄스는 재판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굴욕감을 느꼈다”며 “내 가족이 이 영상을 볼 까 봐 걱정된다. 내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했다. 오하이오주의 한 시민단체도 “이것은 굴욕적”이라며 “피고인의 말할 기회를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존엄성까지 훔쳤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루소 판사는 윌리엄스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성명을 발표했다. 루소 판사는 “입에 테이프를 붙이기로 한 결정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한 뒤에야 이뤄졌다”며 “당신 때문에 재판 54분 동안 60회나 재판이 중단됐다. 나에게는 재판을 통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총구를 겨누며 폭력적인 범죄를 행한 피해자 3명은 수년간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이들을 위해 나는 어떻게든 재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국 판사가 재판을 방해하는 피고인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폭스뉴스 유튜브

그러나 당시 대처를 두고 계속해서 논쟁이 오가면서, 루소 판사는 결국 윌리엄스 재판에서 물러났다. 이후 다른 판사가 윌리엄스의 항소심 등의 선고를 맡았다. 루소 판사는 “제가 맡은 재판이 다른 법조인과 함께 부지런히 일궈온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피고인에게 ‘재갈’을 물린 선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 재판에서 이런 조처를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루소 판사가 말한 ‘재갈’을 물린 선례는 실제로 있었다. 2009년 9월 오하이오주 스타크 카운티 캔턴 법원에서도 스티븐 벨던 판사가 법정에서 계속 투덜거리는 피고인 해리 브라운(당시 51) 입에 테이프를 붙였었다.

미국은 재판에 크게 방해가 될 경우, 판사 재량으로 물리적으로 피고인 입을 막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70년 재판 중 판사가 피고인에게 ‘재갈’을 물리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같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판단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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