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현대에서 고대 이집트를 가다-4

유병숙 충남건축사회 부회장 2023. 6. 14. 07: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병숙 충남건축사회 부회장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봤다면 한 번쯤 왕가의 계곡에 가서 왕들과 왕비들의 무덤에 가봐야 한다. 왕가의 계곡은 이집트 남부 룩소르 지역 델라 엘 바리에 있는데, 계곡 전체가 무덤이다. 이집트 박물관에서 보았던 왕들의 유물이 출토된 곳이며, 소년 왕 투탕카멘의 미이라와 훼손되지 않은 무덤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안내센터에선 투명아크릴로 만들어 지하의 무덤구조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어 계곡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왕가의 계곡에서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은 화려한 색채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무덤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이름 네페르타리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인데, 그녀의 무덤 역시 보존 상태가 그러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녀의 무덤은 QV66(이집트에선 각 무덤에 고유 번호를 설정했다)으로 왕가의 계곡에서도 가장 큰 무덤 중의 하나이며, 각 면에 그녀와 사후 세계에서 그녀가 여신으로 신격화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랜 시간을 지나 현대의 우리에게 선명한 색채와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전달한 덕분에 잘 보존된 왕비의 무덤에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우리가 알게 된 것이다. 무덤은 보존을 위해 1회에 들어가는 인원을 15명 이하로 제한하며, 단 10분 만의 관람 시간을 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무덤에 들어서는 순간 벽화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과 색채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이집트의 벽화, 즉 이집트 회화는 벽면을 장식하거나 여러 기록이나 기념비적인 목적으로 그려졌으며, 기법과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그 당시의 생활상과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생각 및 상형문자를 통해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몸은 정면을 향하고 얼굴이나 발은 옆을 향하게 하는 이집트 회화의 표현 방식은 사실적이면서도 표현주의적 면을 보이고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도가 반영된 회화라는 측면에서 이집트 벽화는 표현주의 회화라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회화 중 하나가 네페르타리의 무덤 벽화인 것이다.

왕가의 무덤에서 투탕카멘과 네페르타리를 만났다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조경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현존하는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최고의 유적,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에 가보면 좋겠다. 장제전은 죽은 왕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장소다. 핫셉수트 여왕은 조카 투트모스 3세가 7살에 즉위한 기원전 1477년부터 21살이 되는 기원전 1456년까지 섭정이자 공동 파라오로서 이집트를 다스렸던 왕이다. 그녀는 여성으로는 왕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생각에 남성적 왕권 기호인 남성용 왕관과 거짓 수염을 착용하며, 자신의 권위와 통치력을 강조했던 여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왕의 장제전은 그녀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와 여왕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됐는데, 장제전 좌측으로는 나일강의 물을 끌어 올린 수로의 흔적이 있다. 옛날에는 아마도 장제전까지 배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철저히 좌우 대칭의 형상을 가진 장제전 계단을 오르기 전, 양옆으로는 조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나무 직경이 20㎝는 넘어 보이는 것으로 역시나 대칭으로 바둑판처럼 배치된 나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아쉽지만, 고대 이집트의 조경이 현존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이집트 조경은 대부분 기하학적인 형태와 대칭성을 강조했으며, 종종 신성한 건축물이나 조각상과 함께 배치돼 신성성과 통치력을 상징했다고 한다. 장제전 앞의 조경지도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배열돼 있다. 고대 이집트 조경 요소들은 신들과의 교감을 도모하고, 제사와 의식을 수행하는 장소로 활용됐으며, 생명과 재생력을 상징하는 요소인 물 역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생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막 한가운데 나무와 수로의 흔적이라니. 고대 이집트인들의 나일강 활용이 놀라울 따름이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