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된 걸까 [프리스타일]

이오성 기자 2023. 6. 14.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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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의사가 있다.

진보 성향 의사 단체에서 활동해왔고, 지역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이다.

꽤 거창한 해석이지만, 그렇게 보면 왜 의사 단체가 간호법을 극렬하게 반대했는지 짐작이 가기도 한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씨가 생애 말기 돌봄 문제를 다룬 책 〈각자도사 사회〉에는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 사업과 관련해 저자가 어느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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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에 의사가 있다. 진보 성향 의사 단체에서 활동해왔고, 지역사회에서도 존경받는 이다. 그랬던 그가 간호법에 대해서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를 들어보니 주류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주장과 별다르지 않았다. 간호법은 간호사 직역만을 위한 법이고, 그 결과 보건의료체계가 흔들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간호법 논쟁에서 의사 개인의 목소리를 듣기가 어려웠다. 상당수가 반대하기도 하거니와 찬성한다 해도 실명으로 직접 의견 내기를 주저했다. 그렇다 보니 강원도의 왕진 의사 양창모씨가 〈한겨레〉에 쓴 ‘의사인 내가 간호법을 지지하는 이유’ 같은 글이 너른 공감을 얻었다. 주류 의사 단체는 아마도 특수한 상황에 있는 극소수 의사의 의견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5월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보건의료운동에 오래 몸담았던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간호법 사태는 간호사가 역사상 최초로 의사의 헤게모니에 도전한 싸움이라고. 1951년 의료법이 생긴 이래 의사와 의료기관 위주로 굴러왔던 의료체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꽤 거창한 해석이지만, 그렇게 보면 왜 의사 단체가 간호법을 극렬하게 반대했는지 짐작이 가기도 한다.

어떤 의사 단체는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간호법의 진짜 목적은 ‘지역사회’에 진출한 간호사들이 돌봄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이라고. 의료 사회주의 운운하는 음모론보다는 차라리 이런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묻고 싶다. 간호사들이 돌봄시장에 뛰어들면 왜 안 되느냐고?

세상이 변했다. 초고령사회에서 병원을 오가기 어려운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료인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발 탓에 의사 수를 늘리지 못하는 가운데, 간호사는 ‘의료기관 안’에서 ‘진료의 보조’ 구실에 머무르고 있다. 주류 의사 단체는 돌봄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간호법 논란이 커지면서 뒤늦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간호법 정국에 관한 한 주류 의사 단체는 돌봄이라는 메시지 대신 간호사라는 메신저를 때렸고, 간호법을 좌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의사 단체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의료인류학자 송병기씨가 생애 말기 돌봄 문제를 다룬 책 〈각자도사 사회〉에는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 사업과 관련해 저자가 어느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개업 의사인 그는 커뮤니티 케어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인 왕진 수가도 없이 어떻게 의사들이 노인 집에 가느냐고 했다. ...게다가 그는 의사가 환자 집에서 특별히 해줄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 집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것도 아니고, 피검사를 할 수도 없다. 3분만 진료해도 1시간에 환자 20명인데, 그 시간에 차 타고 환자의 집에 간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해보니 왜 농어촌 지역에 의사가 없는지, 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왜 낮은지 알 것 같았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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