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눈물, 그리고 남자의 눈물

조갑룡 교육인 2023. 6. 14.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갑룡 교육인

여동생이 서울 병원으로 향하던 날, 먼저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아픈 기억 때문에 마음은 더 안절부절이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울음을 삼키며 손만 흔들었다. 마음이 쉬 가라앉지 않아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 눈물에 빠졌다. 1993년 서면 태화극장, 아버지 유봉이 딸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달일 때 김수철의 ‘천년학’이 흘렀다. 정악 대금의 처연(凄然)함과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라고 하는 유봉의 한(恨)은 횡경막을 흔들었다.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눈이 퉁퉁 부었다. 민망했지만 마음은 시원했다. 눈물이 심신을 이완시켜 긴장을 풀고, 혈압을 낮출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우는 게 좋다.

일본은 ‘오열(嗚咽)과’라는 진료과목이 있는데 환자들로 하여금 소리 내어 울도록 유도하여 우울이나 피부 트러블까지 치료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1997년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직후 영국의 우울증 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다이애나 때문에 실컷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른바 ‘다이애나 효과’다.

미국의 생화학자 빌 프레이는 눈물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눈동자 표면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눈물’, 양파를 깔 때 흘리는 ‘자극에 의한 눈물’, 기쁨과 슬픔의 마음이 불러오는 ‘감정적인 눈물’이다. 그중 ‘감정적인 눈물’에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라는 호르몬이 들어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가하고 눈물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돼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울고 난 뒤 기분이 개운해지는 이유다.

몇 년 전 모 방송국에서 감정적인 눈물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하였다. 슬픈 영화에 의한 눈물과 양파 때문에 흘린 눈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슬픈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에 카테콜아민이 세 배 정도 많았다고 한다. ‘고추방아 눈물은 싱겁디싱겁고 시모 구박 눈물은 이다지 짜디짜냐’라는 남도 부녀자들의 잡가(雜歌)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문제는 남자의 눈물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 공중화장실에 유행하듯 붙어 있었다. 남자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표현이다. ‘뚝 그치지 못해? 사내 녀석이 울긴!’,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매우 차가운 사람을 일컬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 한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를 ‘따뜻한 사람’이라 부른다.

남자의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이유 중의 하나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자나 여자나 울고 나서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은 같다고 하는데, 세상이 남자의 눈물에는 야박하다. 남자는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만 울어야 한다. 평생 3번이다. 참으라는 말이다. 한 시사주간지에서 직장인 남성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울고 싶을 때 참는다고 대답한 비율이 80%였다고 한다. 이쯤에서 남자의 눈물에 대한 챗GPT의 의견을 알아본다. ‘남성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건강한 인간관계와 정신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용기 있는 일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여! 낡은 성역할 관념에서 벗어나자. 울음을 참으면 병이 된다. 한강철교 위로 전철이 지나갈 때 그 아래 남자 주인공이 고함을 지르며 우는 영화 속 장면을 보았는가? 삶의 여울에서는 실컷 울자. 때론 의도적으로도 울어볼 일이다.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도 좋고 심순덕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도 좋다. 남자라는 이유로 신이 준 치유의 눈물을 참을 이유가 무엇인가? 눈물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남자도 울어야 세상이 따뜻해진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