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는 왜 거기 누운 채 발견되었을까
[민언련 특별 모니터 보고서] 제2의 지구는 없다: 저널리즘으로 풀어내는 기후위기-하루 2만1천 건 '부자연스러운 죽음' 조류충돌을 막자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집이나 여행지에서 아침에 새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적 있는가? 달콤한 아침잠을 깨운 새소리를 얄궂게 느낀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소음일 수 있는 새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가 버드킬(조류가 비행하던 중 유리나 투명판을 인지하지 못해 충돌한 후 사망하는 것) 때문이라면 더욱 상상하기 어려울 일이다. 버드킬은 관심 두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죽음이다.
우리는 오늘도 새에게 빚을 지고 있다
새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체될 수 없는 일을 한다. 씨앗 분산과 같은 생태적 역할을 통해 간접적으로 탄소를 흡수한다. 씨앗을 확산하면서 숲을 건강하게 만들고, 건강해진 숲은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새로 인한 씨앗의 확산이 없다면 다종다양한 식물 종이 살기 어렵고, 자연생태계 보존도 어렵다. 새는 작물에 피해를 주는 곤충의 천적이 되어 해로운 농약 사용도 줄인다. 생태계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종의 역할로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지표가 된다.
야생조류는 이렇듯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기후위기 시대를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새는 귀엽다(조류를 무서워하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귀여운 새가 기후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류는 이미 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새들의 '부자연스러운' 죽음
기후위기, 물·토양·대기 오염, 덫, 농약, 로드킬, 전신주 등 새를 비롯한 야생생물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충분히 예방할 수 있어 더 안타까운 위협이 있다. 바로 '야생조류 유리창(+투명방음벽) 충돌'이다. 국립생태원이 2018년 환경부 의뢰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한 해 788만 마리가 유리창 충돌로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부상을 당한다. 건물 유리창에 충돌한 개체가 765만 마리, 방음벽에 충돌한 개체가 23만 마리로 추정된다.
2014년 발표된 북미 조류현황 연구를 살펴보면 서식지 파괴를 제외한 북미권 조류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두 번째가 유리창 충돌로 밝혀졌다. 자연생태계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 아니라 먹이 활동, 짝짓기, 새끼 양육 등 다양한 이유로 비행을 시작한 새가 단 한 번 충돌로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필자는 (사)자연의벗연구소가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청년 모니터링단 에코버드> 5월23일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시민참여 조사 지침서에 따라 한 학교에 설치된 투명방음벽(길이 약 370m, 높이 빌딩 기준 약 2층)을 따라 방음벽의 안쪽과 바깥쪽을 조사했다. 모니터링 내용은 국립생태원이 개설한 자연관찰 플랫폼 네이처링의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미션'에 기록되고 있다.
에코버드를 담당하는 정연주 활동가는 “투명방음벽에 묻는 흔적 중 조류가 비행하면서 배설한 흔적과 방음벽에 부딪히며 생긴 충돌 흔적(배설물, 모이주머니 내용물)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단지나 학교처럼 청소와 관리가 잘 이뤄지는 구역은 충돌이 발생해도 사체, 깃털 등이 잘 치워지기 때문에 조사가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더 많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모니터링에 참여한다면 이런 한계가 보완될 수 있고, 모니터링의 유의미한 관찰기록 자료 증가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의 현황을 파악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정 활동가는 강조했다.
학교 측 동의를 구해서 교내 방음벽 조성 구역을 조사하던 중 에코버드 단원들이 방음벽 아래 녹지에서 당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되지빠귀 사체 1구를 발견했다. 되지빠귀는 갑작스러운 사고 탓인지 눈도 감지 못한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온전한 모습에 눈까지 뜬 채라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해 더 안타까웠다. 어제처럼 일상을 보내다 생이 허망하게 끝난 되지빠귀의 명복을 빌었다.
조사지침에 따라 개체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새를 구하자'라는 조사용 자로 사체를 측정한 뒤 촬영했다. 그리고 방음벽을 따라 수색하던 중 트랜치 홀 밑에서 일부 깃털이 붙어 있는 뼈가 드러난 또 다른 조류 사체를 발견했다. 이 또한 모니터링 항목이기에 기록하고 중복 방지를 위해 수거했다.
처음 참여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모니터링 현장에서 조류 사체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인간이 일상을 보내는 동안 새는 건물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즉 하루에 약 2만 1천 마리 꼴로 새가 죽는다는 사실을 대부분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루 2만 1천 마리 새가 죽는다
국립생태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새들이 활동하는 높이인 저층건물 유리에서 가장 많은 충돌이 발생한다. 조류는 눈이 머리 옆에 달려 있어서 전방 구조물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을 인식하지 못하고 너머에 있는 녹지로 비행하거나 반사된 하늘과 나무 등 자연물이 있다고 여기고 날아가다 충돌하는 결말을 맞는다.
시민과학자들과 환경단체, 국립생태원은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꾸준한 모니터링과 연구,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야생조류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것을 예방·관리하기 위한 환경부 법률 개정(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및 제8조 2항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의 피해방지 조항 신설. 2022년 6월 10일 공포, 2023년 6월 23일 시행)과 2023년 5월 24일 기준으로 38개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하는 성과를 이뤘다. 제도권에서도 유리창을 비롯한 투명한 구조물에서 야생조류 충돌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아직 한계는 많다. 환경부 개정 법률의 경우 실태조사와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 요청은 공공기관 건축물 및 방음벽 등에만 적용되며, 의무나 강제사항은 아니다. 조례의 경우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는데 전반적으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실태조사 △시민 대상 인식 향상 홍보 △저감 및 예방 계획과 시행 △예산 지원 등을 지자체 관리 공공건축물과 방음벽을 비롯한 민간건축물까지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무나 강제사항이 아니기에 지자체장과 민간건축물의 건축주 또는 관리자의 의지가 없으면 시행될 가능성이 낮다.
국토교통부가 2022년 발표한 전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전국 건축물 평균 층수는 1.92층으로 저층건물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전체 건축물 동수는 약 731만 동이다. 민간건축물에 해당하는 동수는 약 709만 동으로 전체의 약 97%이며, 공공건축물에 해당하는 동수는 약 22만 동, 약 3%이다. 압도적으로 민간건축물의 비율이 높다. 개정된 환경부 법률이 적극적으로 시행된다고 가정해도 공공기관의 건축물과 인공구조물에 한정되기 때문에 야생조류의 유리창 충돌 저감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다다익선 시민운동의 역할
시민운동 차원에서 더 많은 시민참여와 적극적 실천으로 제도의 빈틈을 채워야 한다. 우선 시민들이 모니터링에 더 참여해야 한다. 필자는 단 한 번의 모니터링 참여만으로도 유리창 충돌로 인해 아무도 모르게 생명을 잃는 새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네이처링에 개설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에는 2018년 7월 12일부터 2023년 5월30일까지 시민·시민과학자·전문가 4,084명이 참여했고 야생조류 충돌과 관련한 기록은 4만3944개다. 한 해 유리창 충돌 사망 추정치가 788만 마리인 것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더 많은 기록이 필요한 이유다.
더 많은 시민이 새의 안타까운 죽음에 공감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시민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에 연대하듯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문제도 연대가 필요하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시민과 건축가 대상으로 조류충돌 방지에 대한 인식 향상을 비롯해 건축물 설계 단계부터 조류충돌 예방 적용을 촉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 캠페인, 홍보 활동이 중요하다.
탐조전문가 고대현 에코샵홀씨 대표는 “공공건축물, 특히 학교에 야생조류 충돌방지 스티커 부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생물 다양성) 주제 환경교육과 연계되면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아울러 조류 충돌방지 스티커 부착 활동이 전국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서울 노원구 경춘선 숲길 시점부 투명유리 벽 너머 공터로 날아가다 죽는 새들이 많다는 주민 제보가 북부환경정의중랑천사람들(중랑천사람들)에 전해졌다. 2023년 4월4일,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중랑천사람들이 자원봉사자 30여 명과 함께 해당 방음벽에 세로 5cm 가로 10cm 간격으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정숙 중랑천사람들 대표는 사람 손이 닿는 높이 2m까지는 봉사자들이 직접 스티커를 부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전을 위해 사다리차 같은 장비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관할 기관에서 사다리차, 주민 이동통제 등 후속 조치를 통해 2m 이상 높이 방음벽 구간에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 부착을 완료했다는 후기를 전했다.
하지만 조류충돌 방지 활동에 드는 비용 자체가 스티커 부착 활동 의지가 있는 시민단체나 민간건축물 건축주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지자체 조례에 따른 예산 지원, 2m 이상 높이 스티커 부착을 위한 사다리차 동원과 안전조치 지원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법률과 조례가 닿지 않는 곳에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 부착 활동을 위한 모금 등 시민운동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에 생물 다양성을 연결하자
기후위기와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문제를 연결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투명방음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이다.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는 새들에게 통과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태양광 패널 부착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시민운동의 조직적인 조례 제정과 민원으로 지자체, 관할 기관에 도로처럼 시야 확보가 필요하지 않은 투명방음벽이나 건물 유리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 영등포구청 주도로 영등포구자원순환센터 방음벽 상단(길이 143m, 높이 4m)에 양면 태양광 패널 54장을 설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양면 태양광 방음벽 설치 이후 연간 500만 원 정도 전기료를 절감했다고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발전 현장과 조류충돌을 방지하여 생물 다양성도 지킬 수 있는 현장으로서 환경교육 의미도 크다.
새는 인간이 자연 생태계와 연결을 잃어버린 것의 상징이자 희생양이지만, 일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비인간 동물이기에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가교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새는 충돌해서 죽고 있다. 시민운동의 힘을 여기에서도 보여줄 때다.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시민들이 기후위기 보도를 통해 당면한 기후위기 과제를 살펴보는 <제2의 지구는 없다 : 저널리즘으로 풀어보는 기후위기> 강좌를 5월2일부터 31일까지 진행했습니다. 수강생들은 강의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 속 기후위기 문제를 직접 취재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글은 환경교육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지연 수강생이 썼습니다.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를 비롯해 민언련과 제휴를 맺고 있는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등에 싣습니다.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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