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나쁘고 사실은 좋다는 맹신 무섭고 재밌어”
참사 피해 고통 딛고 삶의 주체된 여성
파독 간호사의 생동하는 삶 서로 통해
전형적 모습 아닌 숨겨진 이야기 표현
“일상 언어로 포착 어려운 미세한 감정
소설의 언어를 통해 그려내는 것 좋아
인물의 마음 오롯이 이해하는 데 애써”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는지. ‘파독 간호사’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당시 독일로 건너간 간호 노동자들이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인상적인 전시회였어. 그러니까 말야….
친구 집에서 몇몇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친구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파독 간호사와 관련한 기획전시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설가 백수린이 친구들과 함께 파독 간호사 출신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 주려 했던 해미가 20여년 만에 다시 그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를 펴냈다. 등단 12년 만에 첫 장편으로, 2021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지에 연재된 것을 묶었다.
깊고 느린 시선과, 수채화 같은 담백하고도 섬세한 문장을 선보여 온 백수린이 첫 장편으로 펼쳐 보인 이야기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시간을 거슬러 정면으로 응시한 파독 간호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백 작가를 지난 12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소설은 현재의 해미와 우재 이야기와, 파독 간호사 출신 행자와 말숙 선자 이모 이야기 그리고 두 이야기를 잇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추적기 3겹으로 전개되는데요.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는 197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만 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태어나서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제가 그 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1970년대도, 당시 독일도, 이주 간호 노동자들의 삶도 전혀 모르는 저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파독 간호사’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 개별적인 여성들의 생동하는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소재, 한 여자아이가 참사 피해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삶의 주인이라는 걸 깨닫는 이야기와 독일 여성들의 이야기를 겹쳐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거짓말이 결정적 고비마다 새 전개를 낳는 대목도 재미있습니다. 왜 거짓말이어야 했을까요.
“신춘문예 당선작에서도 저는 ‘거짓말’을 소재로 다루었는데요. 언어에 관심이 많은 터라 그런지, 저는 사실과 거짓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사실이 좋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옳나요? 사실은 정말 진실인가요? 사실엔 정말 거짓이 없나요? 저는 우리가 언어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그 안에는 언제나 사실과 거짓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가 가진 한계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자신이 말하는/들은 사실이 언제나 100%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점들이 때론 무섭기도 하고, 때론 재미있기도, 신기하기도 합니다.”
―소설에선 여러 유형의 파독 간호사들이 나오는데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확신을 가지고 말하긴 어렵지만, 기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파독 간호사는 가난 때문에 독일로 건너가 희생적으로 산 면이 주로 부각돼 재현된 것 같습니다. 산업 역군으로 영웅시되거나, 타지에서 고생하거나, 한국에 돌아와 고생하며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요. 당시 독일로 건너간 여성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고, 그 시절 젊은 여성들 중에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사람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제가 파독 간호사 이모들의 삶을 그릴 때는 기존에 재현되지 않았던 다른 면들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1982년 인천에서 나고 자란 백수린은 2011년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은 무엇인지요.
“저는 소설을 통해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아주 미세한 감정의 균열을 소설의 언어를 통해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소설을 쓰기 힘듭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인물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감정에 몰입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수채화 같은 문체와 깊고 느린 시선의 작가는, 강의를 비롯해 일상인으로 살기 위해 쓰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글을 쓰거나 번역하며 지낸다. 특별히 소설가로서 루틴이라고 할 게 딱히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돋아나고 있었으니. 지독한 야행성이던 그가 최근엔 조금씩 수면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고, 아침에도 예전보다 조금씩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이전이라면 새벽 서너 시에 자고 오전 10시 반이나 11시쯤 일어났지만, 요즘엔 새벽 2시쯤 자서 오전 9시쯤 일어난다고. 아직도 잘 되진 않지만.
점점 당겨지는 수면 또는 기상 시간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운동(필라테스)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몸을 움직이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치곤, 아주 커다란 변화”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소설가 백수린이 그렇게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지치지 않고.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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