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털린 1억…비대면 전세대출의 그늘

김태희·유희곤 기자 2023. 6. 13.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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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미상 남성들, 사회초년생 휴대전화·신분증 빼앗아 대출
전세 계약 취소 후 탈취…간소화된 절차 악용, 대책 마련 필요

경기 안산시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들이 사회초년생의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빼앗아 비대면 전세대출을 받은 뒤 전세금을 빼앗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간소화된 절차만 거치면 이뤄지는 ‘비대면 전세대출’ 방식을 악용해 범죄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관련 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이 사건 피해자 A씨(19)로부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공갈, 공동감금 등 혐의로 B씨 등 4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받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B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A씨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또 A씨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모텔 등에 감금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에 따르면 B씨 등은 지난해 12월1일 A씨를 폭행할 것처럼 위협하며 부동산중개업소로 끌고 갔다. 이후 일당 중 한 명인 C씨는 사촌형 행세를 하며 A씨에게 강제로 1억3500만원의 전세 계약을 맺게 했다. B씨 등은 다음날 A씨의 신분증과 계좌, 휴대전화 등을 도용해 1억원의 전세대출 신청을 하고 행정복지센터로 끌고 가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전세대출금이 임대인에게 송금된 것을 확인한 B씨 일당은 ‘A씨의 어머니가 허락해주지 않아 이 집에 살지 못할 것 같다’며 계약을 취소했다. 계약이 취소된 뒤 대출금 1억원은 대포통장으로 추정되는 제3자의 계좌를 통해 빠져나갔다. 하지만 1억원이라는 큰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A씨는 정작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A씨는 “B씨 등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한 탓에 사업자등록과 휴대전화 개통 등도 해줬다. 이로 인해 다른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등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순식간에 1억원이 넘는 채무가 생겼고, 이자 등으로 매달 70만원씩을 부담하느라 현재 학업까지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비대면 전세대출은 관련 서류나 신분증, 휴대전화 등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간편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를 악용한 범죄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는 인터넷은행 대출 심사의 허점을 노려 허위 전세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1억원을 가로챈 일당 3명이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A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강남의 김태규 변호사는 “자신의 명의로 전세대출이 이뤄질 때까지 휴대전화 등을 빼앗긴 A씨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쉽게 이뤄지는 비대면 대출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대출 방식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비대면 본인 인증은 신분증 사본, 영상통화, 우체국 등 위탁기관을 통한 실명확인이나 기존 계좌 거래, 기타 등 5가지 방법 중 2가지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협박으로 휴대전화나 신분증을 탈취당한 상황이었다면 대면 금융거래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것으로, 비대면 금융거래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태희·유희곤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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