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수사받는 조합원 31% ‘극단적 선택’ 생각”
55%가 스트레스 고위험군
45% 우울감·66% 불안 호소
“집에 가면 딸이 ‘아빠, 나쁜 짓 한 거냐’ ‘경찰 또 오냐’고 할 땐 참 난감하다.”
“30년 변함없이 자부심으로 지내온 세월을 부정당했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고,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는 분노가 일상의 모든 부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 매우 힘들다.”
최근 건설노조 수사로 경찰·검찰·법원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10명 중 3명은 자살 또는 자해를 생각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건설노조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노조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건설노조와 심리치유 단체 ‘두리공감’은 지난달 11일 기준 경찰·검찰·법원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102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지를 배포했다. 설문에 응한 295명 중 30.8%(91명)는 최근 2주간 차라리 죽거나 자해할 생각을 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2주 중 2~6일’은 57명, ‘2주 중 7~12일’은 18명, ‘거의 매일’은 16명이었다.
응답자의 55.3%는 사회심리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했다. 사회심리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태인지, 전반적 행복감을 느끼며 생활하는지를 점검하는 지표다.
응답자의 45.1%가 검사나 진료가 필요한 우울 증상을 보였으며 66.4%는 불안을 호소했다.
장경희 두리공감 상임활동가는 “지난 12년간 많은 사업장에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불안을 호소하는 비율이 66%를 넘은 것은 처음”이라며 “조사를 받으면 불안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높은 수준의 고위험군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설문에 응답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수면시간과 질이 악화했고 술에 대한 의존도도 심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 A씨는 현장 증언에서 “태어나서 조사받은 게 처음이다. 노조활동을 했다고 조사받으러 가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게 억울하다”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있었다. 입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는 게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 B씨도 “경찰이 건설업자 이야기만 듣고 죄인 취급을 하니 억울하고 답답해 죽겠다”고 말했다.
대인기피, 두통, 가슴 두근거림 등을 호소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하지만 심리상담 또는 병원진료를 한 비율은 4.4%에 그쳤다.
장경희 상임활동가는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증상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매우 유사하다”며 “정부 사과, 국가폭력 중단, 노동자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건설노동자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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