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인상 시기 오히려 통화량 316조 원 증가했다

2023. 6. 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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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인상 정반대 효과…"본원통화량도 증가" 지적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한국은행이 장기간에 걸쳐 기준금리를 끌어올렸지만, 시중 통화량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음이 확인됐다. 세계가 글로벌화 시기 장기간에 걸쳐 유지된 유동성 거품을 걷는 가운데, 한국은 오히려 정반대 행보를 보인 셈이다.

13일 KBS 라디오 <홍사훈의 경제쇼>에 출여한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며 "(시중 유동성을 늘려) 시간 벌기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 시기 동안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통화량이나 시중통화량이 다 증가했다"며 "시중통화량은 388조 원이나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렸는데 오히려 통화량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은행 자료를 찾아보면 이는 사실이다.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 인상 국면 시작

한국의 기준금리가 최저 수준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하기 시작한 때는 2017년 11월이다. 당시는 이주열 전임 한은 총재(재임 2014년 4월~2022년 2월) 시기다. 이 전 총재 재임 기간에 세월호 참사(2014년)-메르스 사태(2015년)-브렉시트(2016년) 등의 대내외 악재들이 겹쳐 국내 소비가 침체하고 경기가 부진한 때였다. 이에 이 전 총재는 재임 당시 2.5%였던 기준금리를 2016년 6월에는 1.25%까지 떨어뜨렸다.

이 총재는 그동안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는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발언을 했으나 실제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 이에 안도한 시장에서는 '매파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비둘기'라는 평이 나왔다.

이후 이 전 총재는 첫 임기 종료를 앞운 2017년 11월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외 경제 악화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했고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지구를 휩쓸었다.

이에 이 총재는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끌어내렸다. 2019년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2020년 3월 임시 금통위를 열어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리는 '빅 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한국 기준금리는 이 전 총재 재임기인 2020년 5월에는 최종 0.50%까지 내려갔다.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였다.

이 전 총재가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대열에 들어간 시기는 2021년 8월이다. 전 세계적인 공급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가운데, 코로나19 시기 시중에 매우 큰 규모로 공급된 유동성을 흡수해 자산시장 거품을 꺼뜨려야 한다는 이유로 미국이 주도해 기준금리 인상 릴레이가 일어났다.

이에 이 전 총재는 2021년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75%로 끌어올렸고 2022년 1월에는 1.25%까지 끌어올렸다.

이어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하면서도 한국은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커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갔다. 5월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3.50%다.

▲올해 3월 현재 통화량(M2, 광의)은 3810조4000억 원이다. ⓒ한국은행

통화량 3494조→3810조

이 인상 시기 한은이 발표한 통화량을 보면, 통화량이 오히려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충격 이전인 2017년 11월 통화량(M2, 광의통화)은 2517조 원이었다. 전월 대비 0.2%,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했다.

이 전 총재가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1년 8월 통화량은 전월 대비 1.5%, 전년 동월 대비 12.5% 증가한 3494조4000억 원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올해 3월 현재(통화량은 대체로 두 달 간격으로 발표됨) 통화량은 3810조4000억 원이다. 전월에 비해서는 0.2% 감소했으나 전년 동월 대비로는 3.8% 증가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졌는데 오히려 통화량이 약 2년 사이 316조 원 증가했다. 이는 간단히 말해 한은의 시중 유동성 흡수가 성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 결과를 낳았음을 뜻한다.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은 간단히 말해 물가 다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의 급발진으로 인해 전 세계가 급박한 유동성 흡수에 나선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급격한 금융 환경 변화를 이기지 못한 일부 국가들은 파산에 가까운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그 사이 정반대로 유동성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인 셈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동성을 늘린 국가는 있다. 일본이다. 초장기 디플레이션에 허덕인 일본은 세계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막대한 금융완화 정책을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이른바 아베 노믹스의 핵심 철학 중 하나다. 이를 주도한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는 '2년 안에 시중에 통화량을 134조 엔(약 1340조 원) 늘려 물가인상률이 2%에 이르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일본은 통화량을 늘렸다. 일본은행 자료를 보면, 2021년 9월 현재 1066조 엔(약 1경660조 원)인 일본의 통화량(M2)은 올해 5월 현재 1236조4000억 엔(1경2364조 원)에 이른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가 달랐다는 데 있다. 일본은행은 지금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0.10%다. 은행에 돈을 입금하면 오히려 예금자가 돈을 은행에 줘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이 돈을 다른 금융자산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이익이다. 일본은행의 의도가 고스란히 통화량 변화에 반영됐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건 물가 안정과 더불어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를 더 좁히진 못하더라도 더 벌어지지 않도록은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이에 더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고자 함이었다.

의문이 들법하다. 실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유동성 상황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론에 설명한 때가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23일 금통위 이후(3.5% 유지) 기자간담회에서 유동성 상황에 관한 질문에 "(RP 매입 등의 단기 유동성 공급에 관해) 이렇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이 (기준금리 인상) 통화정책과 상반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 저희들이 한 것은 부분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있을 때 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목표에) 타깃해서 적격담보가 있는 원칙을 갖고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지난해 말 강원도에서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한국의 금융시장에 크게 위기감이 감돌던 때다. 이때 한은이 RP매입 등의 조치로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 불안을 막았다. 즉 통화량 증가는 일시적인 조치였고 한은의 장기 목표는 유동성 흡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 이전과 비교해도 이미 이 시기 통화량 증가분은 적잖았다. 올해 1월 현재 시중 통화량(M2)은 3803조4000억 원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2021년 8월의 3494조4000억 원에 비해 309조 원 증가했다. 이를 단순히 레고랜드 사태 대응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지난해 12월 통화량 역시 3810조1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문제지만… "본원통화량도 증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 등을 이유로 윤석열 정부가 취하는 대출 규제를 완화 정책이다. 실제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서 가계부채 위험이 더 커졌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정부 정책만으로 통화량이 이처럼 늘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최배근 교수 역시 현 정부를 두고 "문제가 생기면 일단 봉합하려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한은에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사훈의 경제쇼>에서 최 교수는 "문제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량(본원통화량, M0)도 증가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KOSIS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작년 10월 269조9000억 원이던 본원통화(말잔, 계절조정계열)량은 11월 272조5000억 원, 12월 278조3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후 올 1월 259조1000억 원으로 줄어들었으나 올 3월에는 265조6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본원통화는 간단히 말해 한은이 시중에 직접 공급한 통화다. 한은이 발행한 화폐와 예금은행이 한은에 예치한 지급준비예치금의 합계액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간 가운데 본원통화량도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이는 한은이 통화정책목표에서 명확히 밝힌 원칙에 위배된다.

한은은 홈페이지 통화정책 부문의 '공개시장운영'에 관해 "한은이 금융시장에서 증권(국공채)을 매입하면 이에 상응하는 유동성(본원통화)이 시중에 공급되며, 반대로 보유 증권을 매각하면 이에 상응하는 유동성(본원통화)이 환수된다"고 밝혔다. 국공채 매매를 통해 본원통화 공급량을 조절해 시중 유동성을 조정하는 건 한은 본연의 임무라고 한은이 직접 밝혀놓았다.

▲최근 본원통화 증가 현황(단위 십억 원).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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