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천일염 품귀…왜?

장상진 기자 2023. 6. 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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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 10kg짜리 큰 포대 없어요?” (손님)

“대용량 소금 없어요. 언제 들어올지도 몰라요” (점원)

13일 오후 7시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식자재마트 입구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 50대 여성 점원은 “방송 뉴스에서 일본 원전 오염수가 배출된다고 하니 사람들이 엊그제부터 대용량 천일염을 찾기 시작하더니 금새 물건이 동났다”고 했다.

클리앙, 82쿡 등 극렬 민주당 지지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일본 오염수 대비 천일염 사재기’가 실제 시장에서 천일염 품귀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일부 온라인 상점에선 천일염에 ‘오염수 방류 대비’라는 딱지까지 붙여 팔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소금 입고 지연 안내문이 걸려있다. /뉴시스

온라인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이 업체의 최근 엿새(6~12일)간 천일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쓱닷컴에선 천일염 포함 전체 소금 제품 매출이 6배 늘었고, G마켓에서도 3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천일염 최대산지인 전남 신안의 비금농협 관계자는 “주문이 2개월치가 밀려 있다. 하루에 주문이 2000개 가까이 들어오니 택배회사가 감당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헀다. 신한군수협에서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했다.

전국 천일염 최대산지인 전남 신안군은 8일부터 소금값을 20% 인상했다. (수협 공지 갈무리) ⓒ 뉴스1

이런 상황은 오프라인 대형마트로 번지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어제·오늘(12·13일) 천일염 매출이 갑자기 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일부 매장에선 물량 부족 보고가 올라오고 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의 카트에 소금이 있는 모습. /뉴시스

일본은 이달 중 원전 오염수 방류 설비 공사를 마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특별한 지적을 받지 않으면 여름부터 처리 과정을 거친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할 계획이다. 오염수의 핵심 물질인 ‘삼중수소’의 예상 배출량은 연간 22TBq(테라베크렐) 수준. 이는 중국이 서해 등 자국 근해에 매년 배출하는 삼중수소(1054TBq) 48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4월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IAEA 기준에 맞는 절차를 따른다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연 국내에서 이러한 천일염 대란 조짐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지난달 10일 각 지역구에 하달한 공문에서 ‘당 대표 지시사항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현수막 게시 개수를 보고받는다’고 했다. 그 뒤부터 서울시내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는데, 여기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밥상 소금 걱정에 어쩌나’라는 문구의 현수막도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공문에서 제시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현수막 32회차 시안/ 민주당

그러자 클리앙·82쿡 등 친(親)민주당 세가 강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호응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8일쯤엔 “소금이라도 좀 쟁여놔야 하나” “오염수 방류하기 전에 소금 사려는데…” 등의 글이 올라오더니 최근엔 “천일염 20키로 5포대 샀습니다” “MBC뉴스보면서 곧바로 천일염 20kg 구매했네요” 등 ‘인증글’이 올라온다.

품귀가 현실화하자, ‘오염수 괴담’을 믿지 않는 소비자들도 소금 사재기에 가세하고 있다. 이날 서울 성동구 한 마트에서 5kg짜리 천일염을 구입한 주부 손모(67)씨는 “바닷물이란 게 전 세계를 돌고 도는 건데 진짜로 그렇게 위험하면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도 “방사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재기 때문에 벌어질 가격 인상이 무서워서 나도 사러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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